유라시아대륙횡단(09.7.28~09.11.07)/터키(09.10.06~)

2009. 10. 14 (수)

SangJoon Lee 2009. 11. 16. 19:32

2009. 10. 14 (수)

 

 

안탈리아의 팬션도, 여기 카쉬의 팬션도 그렇지만 남부 터키의 숙소들은 현대식 호텔이 아니면 대부분 정원이 딸린 ‘ㅁ’자 형태의 기존 집을 개조해서 호텔로 운영하고 있었다. 때문에 집주인=호텔사장=지배인인 경우가 일반적인 듯 싶다. 어제 모니로부터 소개받은 카푸타쉬(Kaputas) 해변을 보러 가기로 하고, 아테스 팬션의 지배인(=사장 아저씨)에게 주변지도를 받았다. 카푸타쉬에 간다고 하니 좋은 선택이란다. 기대가 된다. 야마와 유이치가 다른 지방을 여행하겠다며 아침일찍 숙소를 떠났다.

 

 

팬션 옆의 대형 마트에 들어가 과일 몇 개, 물, 비스킷을 사서 나름 피크닉 준비를 마쳤다. 바닷가를 갈 것이니 라이딩 바지나 부츠는 왠지 귀찮을 것 같다. 파란색 크록스 샌들에 반바지, 그리고 라이딩 자켓을 걸친 채 이뚜까 9호와 함께 12km 떨어진 카푸타쉬로 천천히 달렸다. 4~50km의 저속으로 달리는 데도 작은 돌들이 정강이로 튀어 오를 때마다 어릴 적 친구들과 장난칠 때 쏴 봤던 모형총의 BB탄을 맞는 것처럼 따끔따끔 하다. 

 

 

지난 여름, 러시아를 달리면서 약 5km에 걸쳐 도로 위의 메뚜기 떼를 학살(!)한 경험이 떠올랐다. 도로 위를 검게 덮고 있었던 검은색의 무엇들. 처음에는 몰랐다. 그냥 아스팔트 포장 후 남은 알갱이들이 도로 위에 청소되지 않은 채 쌓여 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리고는 그냥 달렸다. 바이크 위로, 내 라이딩 부츠로, 정강이로 돌 튀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파바박, 퍽퍽, 툭!’ 하지만 보통의 돌들이 부츠에 닿는 느낌이 아니었다. 뭐지? 이뚜까 9호를 세우고 다시금 그것들을 찬찬히 보았을 때 내가 목격한 것은 도로 위를 빽빽하게 뒤덮고 있던 메뚜기떼였다. 이뚜까 9호가 달려가자 이리저리 피하던 녀석들 중 바이크 쪽으로 점프를 잘못한 녀석들은 시속 120km로 달려오는 길로틴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 라이딩 기어와 부츠를 초록색으로 물들였던... 아무튼.    

 

 

해안도로를 12km 달렸는 데도 아직 카푸타쉬가 보이지 않는다. 모니가 분명히 12km로 알려줬는데... 20km 정도를 달리자 경비초소 하나가 보였다. 그곳으로 다가가 카푸타쉬 바닷가가 어딘지 물었더니 바로 여기란다. twenty(20km)를 twelve(12km)라고 들었나보다. 이뚜까 9호를 세우고 초소의 초병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며 오늘은 별로 운이 없는 것 같다고 나를 위로한다. 대신 초소 옆에 나 있는 7km의 긴 협곡을 보여주겠다며 자신을 따라오란다. (원래 사진촬영 금지지역이라는데) 협곡을 배경으로 한 장 찰칵! 하늘이 영 꾸물꾸물 한 것이 한 차례 쏟아질 것만 같은 날씨다. 아니나 다를까, 이내 소나기가 세차게 퍼부었다. 젠장,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어제까지는 쨍쨍하던 하늘이었건만. 어쩌겠는가, 세차게 내리는 비는 일단 피하고 봐야지. 초소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30 여분간 퍼붓던 소나기가 그치자 금새 하늘이 맑아온다. 바로 바닷가로 달려갔다. 

 

 

카푸타쉬. 세상에, 바닷물이 이런 색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구나 싶다. 나의 짧은 표현력으로는 설명불가, 부끄럽다. 이왕 온 김에 나도 한 번 태워볼까! 웃통을 벗고 반바지 차림으로 아무렇게나 바닷가에 누웠다. 좋다, 따듯하다, 뜨거워진다, 따갑다, 익는다, 으읔. 그늘을 찾아야겠다. 라이딩 자켓을 벗어 그것을 돗자리 삼아 그늘 아래 깔고 앉았다. 그리고 가져 온 과일들, 비스킷을 먹으며 지난 번 괴레메에서 만났던 가족여행자들이 건네 준 한 종교단체의 홍보물을 아무런 생각없이 읽어간다. 서너시간 멍하니 있다보니 조금은 처량해진다. 나를 제외하고는 다들 커플, 가족 단위로 카푸타쉬의 에메랄드 바다를 즐기고 있었기에.    

 

 

숙소 메이트인 프랑스 여행객 올레리에와 선착장 근처의 카페에서 저녁을 함께 했다. 아제르바이잔의 프랑스 대사관에서 근무하는데, 곧 근무지를 바꿀 거라며 그 전에 휴가를 내서 이곳 터키로 배낭여행을 왔단다. 런던으로 가기 위해서는 프랑스를 거칠 수밖에 없기에, 프랑스를 지날 예정이라고 하니 프랑스에서 자신의 친구들 집에 머물 수 있게 도움을 주겠단다.

 

 

“올레리에, 헤어스타일이 그... 뭐더라, 아! 아멜리에 닮은 것 같아.” “준, 제발 그 얘기만은 거기까지! 아멜리에 영화가 나오기 전부터 해 왔던 헤어스타일이란 말이야. 그리고 사실 아멜리에의 주인공(또뜨)과 함께 학교를 다녔는데, 걔 정말 멍ㅊ하다고!” “아, 그래? 미, 미안. 하하.”

 

 

... 저녁 후 그녀와 함께 마신 터키쉬 커피. ‘에스프레소+미숫가루’라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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