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 15 (목)
어젯밤 늦게 마셨던 커피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심하게 창문을 두드렸던 세찬 바람 때문이었을까, 밤새 잠을 설쳤다. 내일 득과 이스탄불에서 만나기로 했기에 이틀안에 터키를 남(카쉬)에서 북(이스탄불)까지 관통할 수밖에 없었다. 두 가지 루트 중 선택을 해야 했다. 하나는 카쉬에서 서쪽 해안도로를 타고 에게해에 접해 있는 ‘이즈미르’를 거친 다음 이스탄불로 들어가는 방법이었고, 다른 하나는 내륙으로 곧바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해안도로를 타고 달리면 재미는 있겠지만 거리가 길어지고(1,100km 이상), 내륙도로를 택할 경우에는 거리는 짧지만(980km 정도) 볼거리는 조금 부족할 것 같다. 그래도 1,000km 넘는 거리를 이틀에 걸쳐 달리는 것보다는 심심하더라도 짧은 거리를 택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올레리에와 작별인사를 하고 이뚜까 9호와 함께 카쉬를 벗어났다. 여행의 친구 ‘뮤지카’를 듣고자 엠피3를 꺼낸 순간! 아뿔싸, 어제 해변가에서 라이딩 자켓 안에 엠피3를 넣은 채 돗자리 삼아 깔고 앉았더니...
지리한 달리기가 계속 되었다. 음악이 없기에 헬멧 안으로 바람소리가 ‘쉬이잉~’하고 들어온다. ‘가끔씩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달리는 것도 나쁘진 않지’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신나게 달리는 데 저 멀리서 경찰이 차량들을 일일이 멈춰 세운다. 속도측정이었다. 나 역시 정지명령을 받았다. 내가 77km로 달렸다면서, 터키 도로에서 모터사이클의 규정속도가 75km인데 77km까지는 봐줄테니 앞으로는 천천히 달리란다. 한 두 번 당해보는 것이 아니기에 연신 미소와 함께 ‘테셔꼬르(감사합니다)!’라 말하고 면피전략을 편다. 능구렁이가 다 되어긴다.
......
오늘의 목적지 아프욘(Afyon)을 약 15km 남겨둔 지점에서 지도도 보고 저녁도 해결할 겸 해서 휴게소에 바이크를 세웠다. 시계를 보니 5:30, 빨리 잠자리를 찾아야 한다. 해가 곧 떨어질 테니. 휴게소에 앉아 햄버거 하나를 시켰다. 빡빡한 햄버거를 우걱우걱 뱃속으로 집어넣고 있는데, 울려오는 핸드폰 소리. 동생 뚜까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오빠야, 오늘 시험발표날 맞아?” “어디보자, 15일이니 아마 오늘이 맞을거야.” 그러고보니 오늘이 지난 6월말에 보았던 행시 2차 발표일이었다. 여기 시계로 5:30 이 넘었으니 7시간의 시차를 더해보면 우리시간은 이미 16일 새벽. ‘합격자 발표가 벌써 6시간 전에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이내 뚜까가 다시 묻는다. “오빠 수험번호가 xxxx이 맞아?” “응, 그런데 뚜까 네가 그걸 어떻게 아니?” “오빠야, 축하해!”
떨림도 감동도 없었다. 푸석푸석한 햄버거 빵처럼 덤덤했다. 여러 차례 떨어졌을 때의 후회나 억울함, 그것들에 대한 보상심리가 강하게 밀려오지도 않았다. 단지 그냥 합격이구나라는 생각만이 들었다. 말 그대로 ‘그냥’. 오히려 지금은 당장 눈 앞의 햄버거를 뱃속에 넣는 것이 우선이요, 오늘 밤 비바람을 피해 잘 곳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래, 12,000km를 달려왔던 이 여행이 나의 DNA를 알게 모르게 바꿔버렸나 보다.
휴게소를 나와 5km를 더 달리니 삼거리가 나오면서 드디어 이스탄불 이정표가 보였다. 이정표 뒷편으로 작은 호텔이 보인다. 10km를 더 나아가 아프욘 시내에서 숙소를 잡을까, 어치피 내일 다시 이 삼거리로 와야 하니 여기서 하룻밤 묵고 갈까. 어둑해지기 시작하자 이내 답은 명확해졌다. 주황색 가로등과 그 불빛 아래서의 헤맴. 답은 바로 나왔다.
...호텔 앞에 대형 마트가 보였다. 마트=맥주, 맥주는 나의 힘!
'유라시아대륙횡단(09.7.28~09.11.07) > 터키(09.10.06~)'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9. 10. 17 (토) (0) | 2009.11.18 |
---|---|
2009. 10. 16 (금) (0) | 2009.11.16 |
2009. 10. 14 (수) (0) | 2009.11.16 |
2009. 10. 13 (화) (0) | 2009.11.16 |
2009. 10. 11 (일) (0) | 2009.1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