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19 (토)
생각보다 사마르칸드는 작은 동네였다. 어제는 아침부터 사마르칸드 대학가와 지도상에 나와 있는 공간 이곳 저곳을 돌아보는데, 제 2의 도시라는 이름에 맞지 않게 샌들을 질질 끌고 다니는 느림보 걸음으로도 서너시간 만에 웬만한 곳을 다 둘러볼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까지 잘 볼 수 없었던 모스크나 모슬렘이 있기에 여기 사마르칸드는 상당히 보수적이고 폐쇄적일 줄로만 알았는데 이방인인 내가 신기했는지 여성 둘이 ‘헬로’라고 하며 내게 관심을 보였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뭘로 저녁을 해결할까 생각하다가 ‘아, 디냐’라는 생각이 떠오르자 입에서 군침부터 돌았다. ‘배부른 돼지’.
(사마르칸드의 버스, 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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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안티카를 나오면서 49$ 중 30$은 달러로, 19$는 S로 결제하고자 하니 여주인의 표정이 금새 어두워진다. 며칠 전 알리투어에서 50$를 환전했을 때 받은 90,000S을 500S 180장으로 받았기에 빵빵한 S뭉치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과제이거니와 그리고 어차피 내일이면 우즈베키스탄을 떠나기 때문에 기름값과 약간의 밥값을 제외하곤 S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자국의 S보다 $가 우대받는 현실. 씁쓰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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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열기를 헤쳐나가 내리막길을 달리는 데 저 멀리서 경찰이 나를 세운다. 그러면서 스피드건을 내보이더니 내가 110km로 달렸다며 스피드건에 찍힌 숫자 110을 가리키는 것이다. 무슨 소리? 아까부터 계속 80km 안팎으로 달리고 있었는데. 내 계기판이 고장났거나, 아니면 호기심에 나를 세우기 위해 장난을 치는 것이거나 혹은 스피드건은 ‘폼’에 불과하고 버튼을 누르면 무조건 110이 나오도록 해서 주머니 채우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치자 내심 불쾌했다. 그래도 ‘조커페이스’를 유지해야 한다. 씨익 웃으면서, 헬로부터 외친다. 뭐라고 하는 데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도큐먼트’라는 단어 하나 뿐. 이 서류 저 서류 다 꺼내어 내보여 주면서 연신 웃음으로 영어+우리말 섞어가며 재잘대자 그의 얼굴에서 ‘이번 낚시는 꽝이군’이라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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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라로 들어와 중심가인 ‘라비하우즈’에서 서성이고 있자니 배낭여행객으로 보이는 여성이 다가와 숙소를 찾고 있냐고 묻는다. 터키에서 온 여행자 ‘세마’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자기가 묵고 있는 호텔이 시설, 가격면에서 괜찮다며 안내해 주겠단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제안에 끌린다. 별다른 악의가 보이지 않았다고나 할까. 어차피 부하라는 관광 목적보다 투르크메니스탄으로 내려가기 전 하루 묵고 가는 게 목적이었기에 그녀가 소개해 준 호텔 ‘파티마’에 여장을 풀었다. 파티마 마당 한 켠에 이뚜까 9호를 세워두고 8500km를 달리면서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에어필터를 청소했다. 나도 참 게으르긴 게으르다.
작은 연못인 라비하우즈 주변에서 세마를 만나지 못한 채혼자서 제대로 바가지 뒤집어 쓴 저녁을 먹고, 알마티에서 만났던 엔리코와 아스타나의 스티브에게 이메일로 안부를 전했다(알고 보니 나와 세마가 호수를 가운데 두고 정반대 방향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선 참 맛없기에 이름도 기억 못하는 병맥주-게다가 주둥이 부분이 깨져있다-를 마시면서 일기를 적으며 우즈베키스탄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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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쉬켄트에서의 나흘, 사마르칸드에서의 사흘, 그리고 이곳 부하라에서의 이틀. 일주일 머물고자 알마티에서 비자 받으려 고생했던 기간을 생각하면 다소 억울한 마음까지 들기도 했지만 다음 여행지인 투르크메니스탄의 비자가 기한이 정해진 통과비자인지라 이해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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