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20 (일)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이 잔뜩 몰려있다. 비가 내릴 분위기이다. 어제 깨끗하게 청소한 에어필터를 비가 내리기 전에 다시 조립하기 시작했다. 세마에게 아침인사를 건네며 비가 내릴 것 같다고 하자 곧 맑아질 거라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새 그랬냐는 듯 금새 햇볕이 뜨겁게 내리쬔다.
호텔 파티마의 푸짐한 아침식사를 즐긴다. 7년간 중앙아시아 및 몽골지역만을 계속 여행하고 있는 세마도 예전에 자신의 모터사이클로 여행을 한 경험이 있다면서 자신의 여행기를 얘기해 준다. 그래서 어제 모터사이클 여행자인 내게 친숙하게 다가왔던 것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얼마 전 몽골에 있을 때 ‘long way round’의 이완 맥그리거 팀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면서, 20~30명의 스탭과 함께 하는 라이딩을 마치 자신과 동료 둘 만이 하는 것처럼 꾸미는 그들의 할리우드식 다큐멘터리를 연신 비웃는다. 토니도 같은 말을 했었는데... 터키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세마와 헤어졌다.
......
식사를 마치고 투르크메니스탄의 국경을 향해 이뚜까 9호를 몰았다. 길 옆으로 면화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국가문장이 왜 면화와 쌀(혹은 보리)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주요도로인 ‘M-37’은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도로사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물론 러시아의 비포장 도로에 비한다면야 백배 낫지만, 포장만 되어 있다 뿐이지 올록볼록 엠보싱이다. 덜컹거리면서 두 시간 정도 달리다보니 방풍쉴드가 휙 하면서 날아가버린다. 며칠 전부터 계속 벨크로가 떨어지곤 했는데 이제는 다시 붙이기 어려울 것 같다. 날아간 방풍쉴드를 주워와 배낭 뒤에 묶었다. 이란에 들어가거든 나사로 고정해야할 것 같다.
우즈베키스탄 쪽 국경은 별다른 무리 없이 통과하였다. 우즈베키스탄 국경과 투르크메니스탄 국경 사이의 약 300m 무인지대에 화물트럭들이 길게 줄서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화물트럭 기사들에게 환율에 대해 물어봤다. 우선 수박 한 조각 먹으라면서 큼지막하게 썬 수박 한 덩이를 건네준다. 그리고서 이해하기 힘든 말만 되풀이한다. 1$에 2.8M(Manat, 마낫)이라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1M짜리 지폐가 1M이 아니라 5,000M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여태껏 알고 있었던 내용과 사뭇 달라서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세관 앞에 새로운 화폐발행에 대한 안내문이 붙은 것을 본 후에야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2009년 1월부터 새 화폐 발행이 이뤄졌고, 기존의 5,000M은 신 화폐 1M과 같다는 ‘디노미네이션’이 이뤄졌던 것이었다. 그러니 론리플래닛의 내용과 다를 수밖에.
투르크메니스탄 쪽 국경은 수화물 검사(배낭, 사이드백)는 전혀 없었는데 서류와 비용문제로 적잖이 시간을 잡아먹는다. 여권심사에 12$, 통과할 도로의 길이에 따른 도로통행세 67$. 투르크메니스탄의 국경을 통과하는 데 미화로만 약 80$이 소요되었다. 게다가 미화($)만 받는다. 달러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고들 하는데, 이곳 중앙아시아에서 달러는 여전히 화폐의 ‘왕이로소이다.’
한편으로 서류를 꾸리는 과정에서 발견한 것인데 알마티의 투르크메니스탄 영사관에서 나의 출국세관(국경)을 아쉬그밧 아래에 있는 ‘호우단’로 기재한 것이 아니라 200km 앞에 있는 ‘사라즈’로 비자에 명기해 놓았다. 하지만 아무리 통과비자라고는 하나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 아쉬그밧을 놓칠 수는 없다. 여권담당자에게 문의하니 별 문제 없을 것이라면서 다른 서류들에는 출국세관을 호우단으로 적시해도 괜찮다고 한다. 담당자의 태도가 그다지 믿음이 가지는 않았지만 어찌되었건 비자와 달리 세관 서류들은 ‘호우단’을 출국세관(국경)으로 적시했다. 이제 그곳에 가서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다.
국경을 통과하여 투르크메니스탄으로 들어왔다. 워낙에 ‘중앙아시아의 북한’이라는 말을 들어왔던 까닭에 잔뜩 움츠려 있었지만, 투르크메니스탄 사람들의 표정은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은 것 같다. 먼저 다가가서 말을 나누고 길을 물어보면 미소와 함께 답해준다.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에서와 마찬가지로 흔치 않은 모터사이클 라이더에 대한 호기심 어린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역시 ‘百聞不如一見’ 이라는 옛말처럼, 괜히 편견에 사로잡혀 겁먹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부끄러움과 투르크메니스탄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이 교차했다. 그런데 불과 10여km 떨어져 있는 국경도시이자 투르크메니스탄 제2의 도시인 ‘투르크메나밧’을 찾아가려는 데 그 흔한 이정표 하나 안 보인다.
길 옆의 자동차 용품점에 이뚜까 9호를 세운 후 길을 물어보는데, 가는 길을 안내해 줄테니 자기 차를 따라오란다. 중간에 주유소에 들러 10L를 채웠는데 3$ 내란다. 속으로 ‘엄청 싸다’를 외치면서도 겉으로는 “와우, 츗츗 도러거!(조금 비싼데)”를 읊조리며 비싸다는 제스처를 취한다. 많이 약아졌다. 재미난 것은 자국 화폐가 엄연히 있음에도 사람들의 주머니에는 많건 적건 $가 있었다. 그리고 주유소에서도 $를 받고 마낫(M)으로 환전도 해 준다. 흔히들 우리말로 ‘암달러상’이라는 블랙마켓이 사실상 화이트마켓이나 다름없었다. 은행에 가서 정식 환율로 환전하면 바보 취급 받는 곳. 우즈베키스탄에서도 그랬지만 여기 투르크메니스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참에 타쉬켄트에서부터 천덕꾸러기 취급받아온 1988년 발행 50$를 암시장의 공식 환율(140M)보다 조금 낮은 환율(130M)에 환전하였다. 지금까지 몇 차례 환전을 하고자 했지만 오래된 화폐(1988년 발행)인 까닭에 블랙마켓뿐만 아니라 국영은행(우즈베키스탄)에서조차 기피하는 데다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에 가서나 쓸 수 있을 것 같아 낮은 환율을 받아들였다.
주유소를 지나 조금 더 내려가니 톨게이트 비슷한 것이 나온다. 투르크메나밧에 진입하기 위한 도로통행세 및 도강세를 또 내야 했다. 톨게이트 앞에서도 젋은 청년들이 달러뭉치를 들고서는 환전을 하자고 한다. M(마낫)이 왜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아무튼 ‘5$(M으로 결제할 때에는 22M)+7$’를 내고서 임시로 부설된 다리를 지나 투르크메나밧으로 진입하였다. 주유소에 있던 택시기사의 도움으로 시 외곽에서 시내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리고는 호텔 투르크메니스탄 뒤편의 작은 호텔에 여장을 풀고자 하니까 10$ 내라고 한다. 물론 시설이야 많이 낡고 허름하지만 사실 하룻밤 자는 데 10$면 한국의 물가수준을 감안할 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한 편이 아닐 수 없다. 여행이 나를 ‘쫌생이’로 만드는 것인지, 얼마냐고 묻고 나서 가격을 듣게 되면 조건반사적으로 비싸다는 표정부터 짓게 만든다. 내가 속칭 ‘5$ 여행’을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쨋건 마낫이 아닌 $, 우즈베키스탄에서도 그랬지만 여기서도 어김없이 숙박비 기준은 $이다.
지도에 나와 있는 시장에 가서 저녁을 해결하고자 작은 도시(투르크메니스탄의 제2의 도시이지만) 투르크메나밧을 걷는데, 동네 어귀에 카페(식당, 옆 사진)가 보였다. 그리고 피어오르는 샤슬릭 연기. 시장은 무슨 시장, 이곳이다 싶은 생각에 가격을 묻고 이내 샤슬릭 두 꼬치와 락흐만을 주문했다. 포만감이 나를 사로잡는다. 다시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맥주 두어 병 사려고 가게에 들어서는데 맥주가 보이지 않는다.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에서는 너무나 많은 맥주 종류에 ‘무엇을 골라야할지’ 몰랐던 반면에 이곳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맥주를 ‘어디서 구해야할지’ 모르겠다. 부하라에서도 그랬지만 이슬람 문화가 점점 강해질수록 알콜음료 가짓수와의 거리도 반비례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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