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21 (월)
약 550km 떨어진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 ‘아쉬가밧’을 향해 출발했다. 아침에 본 투르크메나밧은 어제 오후에 보던 것과 달리 제 2의 도시로서의 위용을 드러냈다. 어제 너무 늦게 도착해서 미처 투르크메나밧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작다’고만 섣불리 생각했다.
투르크메나밧과 아쉬가밧 사이에는 ‘마리’와 ‘테진’이라는 두 개의 큰 도시가 있다. 그리고 투르크메나밧과 마리 간 180km의 M-37도로는 카라쿰 사막과 레페텍 사막 지대를 양분하며 남북으로 이어져 있다. 그 180km를 달리면서 주유소라고는 투르크메나밧에서 150km 떨어진 곳에서 하나 보았으니 어제 투르크메나밧에 들어가기 전 기름을 넣지 않았다면 아찔할 뻔 했다. 그나마 투르크메나밧-마리 구간은 지금까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세 나라에서 보아온 고속도로 중 가장 훌륭한 도로였다. (사진 속에 뚜까 있다.)
마리 주변에서 샤슬릭과 샐러드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한 후 다시 아쉬가밧을 향해 출발하였다. 곳곳에서 만나는 교차로와 로터리는 매번 나를 당혹케 한다. 그나마 대도시를 연결하는 주요도로 상의 사거리는 답이 뻔하다. “쁘리야마(곧장 직진)!” 그런데 사거리가 아닌 T자 형태의 삼거리 앞에 서면 어디로 가야 맞는 것인지 마치 ‘찍기시험’을 보는 기분이다. 도심에 들어설 때와 교차로 앞에 설 때마다 왜들 Garmin社의 ‘zumo’ GPS를 달고 여행하는지 십분 이해가 간다.
투르크메니스탄의 대표적인 특징은 길에 이정표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내가 투르크멘어를 몰라서 알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의 스탄국가들은 도로상의 이정표를 자국어와 러시아어로 병기해 왔기 때문에 이정표가 ‘없다’고 하는 게 맞는 듯 싶다. 그러다보니 길을 계속 달리다보면 내가 달리는 이 길이 맞는 길인지 헷갈리게 되는데, 어제 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 국경을 넘기 전 트럭기사들과 얘기를 나눌 때 한 명은 이란에서 그리고 다른 두 명은 터키에서 왔다는 게 떠올랐다. 내가 달려야 할 길이 이란과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들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에 중간중간에 이란이나 터키 번호판을 달고 마주 오는 트레일러를 보게 되면 제대로 찾아가는 것이겠거니 생각하며 스로틀을 당겼다.
......
마리를 지나 철길건널목에서 서행을 하는데 흰색 라다 승용차가 내 옆으로 다가와 “헤이~!” 하며 반갑게 손짓한다. 많이 경험해 본 터라 나 역시 손을 들어 인사해줬다. 그런데 잠깐 자기의 집에서 차 한잔 하고 가란다. 갈 길이 400km 남았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잠시 주춤했으나 이 넓은 세상에서 오늘 하루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이겠거니와 이 때가 아니면 투르크메니스탄의 시골마을의 집을 볼 기회가 없겠다 싶어 흔쾌히 그를 따라갔다. 작은 시골마을의 작은 집에서 ‘아쉬르’와 그의 아들 ‘세르다’는 이뚜까 9호와 함께 세상구경 하고 있는 나를 一期一會의 마음으로 차 대접을 한다. “뚜리스트?” “다(네).” “아딘(혼자)?” “다.” “키밀센(김일성)?” “하하, 야 유즈나 까리이(남쪽 코리아 사람이예요).” 카자흐스탄에서는 ‘코리안샐러드’와 ‘장금이’,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주몽’과 ‘장금이’, 그리고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키밀센’이 코리아의 대표적 아이콘이었다. 결혼은 했는지도 묻는다. 아니라고 하자, 결혼하게 되면 세계여행을 할 수 없다면서 대단하고 부럽다며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으쓱해진다. 내가 뭐 그리 대단한 녀석이라고 이렇게 따듯한 대접을 받아야 하나 싶으면서도, 제일 좋아하는 과일 ‘디냐’가 나오자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배부른 돼지가 되길 자처하며 게걸스럽게 먹어댔다. 차체와 헤드라이트 프레임 사이를 연결해 주는 볼트와 너트가 헐렁해진 것을 발견했던 차에 어차피 쉬다 가는 길이니 그의 앞마당에서 간단히 경정비를 마쳤다. 그리고 차 대접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기고 다시 아쉬가밧을 향해 출발했다.
또 T자 삼거리다. 왼쪽으로 갈까, 오른쪽으로 갈까. 테진 가는 길을 몰라 다가오는 승용차를 붙잡아 물어보니 자신도 테진을 지나 아쉬가밧으로 간다며 자기 차를 따라오라고 한다. 덕분에 별 어려움 없이 테진 시내를 벗어나 다시 M-37 상에 올라타게 되었다. 그런데 낮에 넣었던 기름이 많이 떨어졌다. 아직 7~80km를 더 나아갈 수 있었지만 주유소가 흔한 곳이 아니기에 우선 주유소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저 멀리 주유소가 보인다. 찾아갔으나 아직 영업을 시작하기 전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해는 서서히 저물어가고 아직 가야할 길은 120km가 남아있다. 어찌한담. 그런데 새로 짓고 있는 그 주유소 옆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나는 것을 보자 몸이 알아서 반응한다. 우선 저녁부터 먹고 생각하자. 점점 배부른 돼지의 전형이 되어간다. 점심때와 마찬가지로 저녁도 역시 샤슬릭과 샐러드로 배부르게 먹었다.
......
저녁을 해결하고 나니 오후 7:10. 벌써부터 주변은 깜깜해졌다. 새 주유소에서 300m 떨어진 바로 옆 자리에 주유소가 있다고 카페 직원이 알려주어 거기를 향해갔다. 주변에 주유소가 정말 없긴 없나보다. 차들이 주유소 입구 밖에서부터 급유기까지 길게 줄서 있다. 주유 후 시계를 보니 8시. 이미 주변은 칠흑 같은 밤. 갈등이 생긴다. 야간주행은 가급적 피해야 하는데.
서울에서 이뚜까 9호의 라이트를 제논 라이트로 교체하면서 상향등 기능을 제거했기 때문에 밤에 멀리까지 비출 수 없다. 때문에 밤에 라이딩을 하더라도 멀리에 있는 도로나 사물을 구분하지 못한 채 바로 앞만 볼 수 있다. 그러다보니 야간주행이 꺼려지거니와 설령 하더라도 거북이 주행이다. 주유소에서 아쉬가밧까지 120km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말을 믿고 ‘두 시간이면 도착하겠구나’ 라고 속으로 계산한 후 비상등을 켠 채 시속 70km를 정속으로 하여 야간운행을 감행했다.
이정표는 커녕 중앙선조차 없는 올록볼록 엠보싱 도로의 좌우앞뒤에서 시속 100km 이상으로 승용차들이 씽씽 달린다. 게다가 마주 오는 차들 모두가 상향등을 켠 채 달리다 보니 가뜩이나 어두운 밤길에 내 시야마저 가려진다. 한 시간 정도를 달리자 다시 갈등이 생긴다. 길 옆에 바이크를 세워두고 고민을 시작했다. 노숙을 해버릴까. 별들은 또 왜 이리 밝은지. 이 때 다행히 아쉬가밧으로 향하는 듯한 자동차 한 대가 나를 지나치자 속도를 줄이더니 다른 차들과 다르게 6~70km의 속도로 진행한다. 비상등을 켠 채 갓길에 바이크를 세워 둔 나를 알아본 것일까? 아무튼 어두운 밤길에서 그 차를 목표삼아 30m 간격을 두고 따라갔다. 아무리 봐도 그 차가 나를 안내해 주려 그랬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가밧을 20km 정도 앞 둔 곳에서부터 도로가 갑자기 넓어진다. 지금까지의 길과 달리 상행선과 하행선이 나뉘어져 있고 편도도 4차선에 가깝다. 물론 차선표시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리고 그 길에서부터 나를 안내해 주던 번호판 4456 차량은 속력을 내어 멀리 사라져갔다. 멀어져가는 붉은 색 미등을 바라보면서 마음속으로 연신 ‘고맙습니다’를 되뇌었다. 사방이 전부 먹물같은 깜깜함 속에서 내가 향하는 곳 저 멀리의 하늘이 다른 곳과 달리 주황색을 띄고 있다. 불현듯 현종의 말이 떠올랐다. “내가 화악산에서 근무(공군)할 때 말이야, 밤에 보면 다른 곳과는 달리 서울 쪽 하늘은 훤해. 도시의 불빛이 그렇게 만드는 거지.” 아쉬가밧이 그랬다. 그렇지만 지금 내게 그 아쉬가밧 하늘의 광공해는 밤이라는 자연을 지배하려는 도시인의 욕망을 보여준다기보다 오히려 ‘덜덜 떨면서 야간운행 하고 오느라 고생했다’라고 위로를 건네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쉬가밧에 도착했다. 화려한 불빛과 수 많은 자동차들. 정치적으로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외견상으로 봤을 때 투르크메니스탄을 ‘중앙아시아의 북한’이라는 수식어로 설명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따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곳 현지인의 도움으로 론리플래닛에 나와있는 ‘홈스테이’를 찾아가 봤으나 너무 어두워서 헤매기만 하다가 결국에는 호텔 아쉬가밧에서 1박에 25$을 내고 2박3일 투숙하기로 했다. 아침식사가 없는 호텔에 50$이라.
......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투르크메나밧과 마리의 중간 즈음 어디에선가 당나귀 수레에 토마토를 싣고 가던 젊은 친구가 바이크를 타고 달리는 나를 보더니 인상 찌푸린 표정으로 뭐라고 외치면서 토마토를 집어 던지려고 했던 일. 지금까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웃으면서 손을 흔들거나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았건만, 무엇이 그로 하여금 욕설-이어폰을 꽂고 있는 나로서는 표정으로 이해할 수밖에-을 내뱉게 했을까.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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