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8. 7 (금)
어젯밤 발레리와 함께 마신 우크라이나 보드카(사마곤)가 너무 독해서인지 아침에 일어나니 정신이 멍하고 갈증이 밀려왔다. 그나마 발레리의 자랑처럼 사마곤이 숙취가 덜한 술이었다는 게 다행이었다.
텐트와 짐을 정리하는데 발레리가 자신의 디지털카메라 메모리카드가 꽉 차서 내 노트북에 자신의 디지털카메라 파일을 옮길 수 있냐고 묻는다. 발레리의 디지털카메라가 마침 소니 것이다. 내 것도 (오래된 똑딱이지만) 소니 것이기에 가방을 뒤져 남아있던 메모리카드 하나를 그에게 선물로 주었다. “준, 정말 고마워!”
이제 갈증 해결이 급선무다. 갈증을 해결하고자 물을 찾다가 공사현장에 있는 이동식 음식점-우리식의 함바인데, 고물버스로 만들어서 구간마다 이동을 해 가며 인부들에게 식사를 제공한다. 땅이 워낙 넓다보니 공사현장도 군데군데 떨어져 있다-이 보이길래, 단돈 65RU에 배불리 식사를 해결했다. 갈증 탓에 차만 석 잔을 연거푸 마셨다. 차 석 잔에 오전 내내 괴롭히던 갈증이 사라지자 마치 원효대사께서 설파하셨던 ‘해골물의 진리’를 깨닫게 된 느낌이다.
발레리와 내가 서로 가야할 방향이 다르기에 헤어짐을 아쉬워하는데 발레리가 철학자 같은 말을 던진다. “The road is waiting for us. Who knows? In someday in someplace, we can meet again!”
......
발레리와 헤어졌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이번에도 어김없이 비다. 게다가 기름도 별로 없다. 그런데 달려도 달려도 주유소는 보이지 않는다. 어쩐담. 마침 저 멀리에 카페(식당)가 보이길래 그곳에 세워져 있던 트레일러로 다가가 근처 주유소가 어디있는지 물었다. 앞에 있는 작은 길을 따라서 7km 정도 들어가면 마을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주유소가 있을 거라며, 자신도 그곳을 향해 가니 트레일러를 천천히 따라오라고 한다. 주요도로가 아니다보니 진흙밭이다. 기어를 1단, 2단에 놓고선 조심조심 따라간다. 왕복 14km의 거리였지만 덕분에 기름통을 채우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치타를 향해 가는 길에서 반대방향(하바로브스크)으로 가는 바이크 라이더들을 10대 이상 만나게 되었다. 정차해서 인사를 나누고 통성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멀리서부터 손을 흔들며 스쳐지나가는 것으로 짧은 만남을 끝내지마는, 그 순간만큼 내가 혼자 외로이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푸른 하늘 어디에선가 나와 같은 동료들이 배낭을 뒷좌석에 묶은 채 바이크와 함께 길을 떠나고 있다는 형제애를 느낀다.
순례자들에게 복이 있기를!
......
치타를 300km 남겨두고서 전진이냐 휴식이냐를 고민하다가 휴식을 선택하고 근처의 주유소에서 여관을 물어 ‘체르노쉐브스크’의 민박에 머물기로 했다. 주유소의 직원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그제 가스띠니짜?(여관 어디있나요?)’라고 묻자, 가는 길과 연락처가 적힌 명함 한 장을 건네준다. 엉성하게 그려진 지도를 믿고 도로 한 복판으로 지나다니는 소떼를 피해 이리저리 헤매고서야 여관을 찾았다.
그런데 흔한 ‘가스띠니짜’ 간판도 없다. 매우 허름한 목조 민박인데다가 시골마을이라서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주인인 ‘볼로쟈’ 아저씨의 맞이함이 범상치 않다. 알고 보니 아저씨는 여러 번 세계일주 라이더들의 방문을 경험하신 분이셨다.
민박에는 나와 반대방향으로 가는 러시아 엔지니어 셋이 먼저 와 있었다. 흔히들 그들이 농담으로 말하는 ‘러시안 트레디션’인 보드카를 원샷으로 비우기 몇 차례 끝내자 손짓 발짓으로 대화가 시작된다.
“앗쿠다(어디서 왔어)?” “까레이(한국에서).” “오, 까레이!” “쿠다(어디로 가니)?” “치타, 이 빠똠 이르쿠츠크(치타를 거친 다음 이르쿠츠크에 가).” 보드카 몇 잔이 들어가자 통역이 필요없다. 만국공통의 이 현상이 신기할 뿐이다.
볼로쟈 아저씨가 적당히 마시고 샤워 하라면서 숙소 옆에 나무집으로 만들어 놓은 ‘반야(러시아식 사우나)’로 나를 데리고 간다. 뜨겁게 끓여진 물로 전통식 샤워를 하니 이내 몸이 노곤노곤 풀어진다.
... 눈이 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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