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대륙횡단(09.7.28~09.11.07)/러시아(09.07.28~)

2009. 8. 6 (목)

SangJoon Lee 2009. 9. 10. 19:08

2009. 8. 6 (목)

 

 

베르고르스크에서 막 출발하려는데 녹색 제복을 입은 누군가가 제지를 한다. 러시아어로 뭐라고 하더니 말이 통하지 않자 이내 “Do you speak english?”라고 묻는다. 당연하지. 그런데 웃긴 것은 러시아 사람들은 언제나 영어 할 줄 아냐고 먼저 묻지만, 이제야 의사소통이 되겠구나 싶어 내가 들뜬 마음에 “Yes, of course!”를 외치면 이내 묵묵부답이다. 차라리 묻지를 말던가.

 

 

어찌되었건 의사소통이 안 되자, 다른 동료를 전화로 부른다. 다른 동료가 오기 전까지 사진 찍었던 것을 보여주면서 ‘네 사진 찍어도 되냐’고 손짓발짓으로 물었더니 “No! No!”라며 대신 나를 찍어 주겠단다. 덕분에 내 사진이 기록으로 한 장 남게 되었다. 동료가 도착했다. 그런데 그 역시 의사소통이 안 되자 또 다른 동료도 부른다. 결국 한 시간이 지나고 내게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알고는 “Go!” 한 마디 던진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들은 국경경찰 혹은 세관경찰이고, 아마도 외국인으로 보이는 내게서 돈을 갈취하려고 그랬을 것이라고 다른 러시아 사람이 귀뜸해 주었다. 하지만, 남는 게 시간인 여행자이겠다, 알아듣지 못하는 러시아어에 대항하는 유일한 무기인 ‘미소짓기’로 무장한 내가 유리한 것은 기정사실 아니겠는가.

 

......

 

자갈길에서 반대방향에 누군가가 스쿠터에 잔뜩 여장을 싣고 가길래 손을 흔들어서 인사를 나누었다. 우수리스크까지 125cc 스쿠터로 여행을 하는 러시아인-외모는 아시아계 사람이었다-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이런 비포장길에서 얼마의 속도로 달리냐고 묻는다. 그래서 6~70km로 달린다고 답하자 자신은 시속 30km의 속도로밖에 나아갈 수 없다며 웃음을 짓는다.

 

 

그와 헤어진 후 몇 십 km를 더 달린 후 소변을 보려고 다리 옆에 이뚜까 9호를 세웠다. 다시 출발하려는 데 문득 가방 뒤에 매달린 예비기름통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토니의 말이 스친다.준, 많이 매달고 다닐 필요 없단다. 예비기름통이 필요하면 현지에서 조달하면 된단다. 무게를 줄이도록 노력해봐.” 휙~. 거금 35,000원을 주고 구한 기름통이 다리 아래로 날아간다. 안녕. 

 

......

 

치타를 향해 가는 도중에 비포장길이 끝나고 아스팔트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길을 묻기 위해 브레이크를 잡았는데, ABS가 해제되어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브레이크가 강하게 잠기면서 그대로 아스팔트 위에서 슬라이딩을 했다. 그 사고로 핸들이 왼쪽으로 약 2° 정도 기울고, 하바로브스크에서 수리했던 왼쪽 사이드백은 완전히 망가지게 되었다. 왼쪽의 안개등과 앞쪽의 방향등도 고장이다. 그리고 첫 부상을 입었다. 오른손 엄지손가락 아래의 두툼한 부분(인대부위)이 욱신거리기 시작한다. 어깨도 아파온다. 꼴 좋다.

 

 

오프로드도 아니고 아스팔트 길에서 미끄러졌다는 부끄러움에 혼자 분을 삭이며 달리는데 약 3km를 달렸을까, 혼다의 아프리카 트윈을 타는 라이더 한 명이 반대방향에서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었다. 이내 악수와 함께 서로의 통성명을 한다. “나, 서울에서 온 상준이야. 그냥 편하게 ‘준’으로 불러.” “나는 우크라이나에서 온 ‘발레리’라고 해.” 그는 며칠 전 바이칼 호수에서 지내고 지금 나와는 반대로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는 길이라면서 바이칼 호수의 물 한잔과 그곳의 특산물인 말린 생선(오물)을 내게 건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앞으로 꽤나 먼 거리를 달려야 도시가 나올 것 같기에 발레리와 함께 ‘아마아르’ 근처에서 야영을 하기로 했다. 가지고 간 쇠고기 죽으로 저녁을 간단히 해결하자 발레리는 나에게 소금에 절인 햄인 콜바사와 우크라이나산 보드카(사마곤)를 꺼내며 야영을 자축하자고 한다. 그리고선 콜바사 한 덩어리를 내게 선물로 준다. 무엇을 답례로 할까 생각하다가 그가 여관보다는 야영을 선호한다고 하길래 가지고 간 캠핑용 가스와 오뚜기 스프, 그리고 쇠고기죽을 선물로 주었다.

 

 

‘Good Guys Ride AfricaTwin’이란 문구가 새겨진 자켓을 입고 있는 스물일곱의 발레리는 세 명이 함께 라이딩을 한다며 자신의 여행과 라이딩 철학을 이야기 한다. 자신, 바이크, 그리고 하늘에서 보살펴 주시는 신. 그에게 있어서 행복(happiness)은 3가지에서 온다며 사마곤의 취기에 몸을 맡긴다. 여행(라이딩), 음악, 친구들과의 대화. 순수하고 소박하지 않은가!

 

 

야영자라는 1년에 단 한번뿐인 만찬을 놓치기 싫어하는 악명높은 시베리아의 모기떼들만 빼놓고는 정말 멋진 밤이었다. 문제는 40%가 넘는 사마곤을 주거니 받거니 ‘원샷’을 해서 서로가 너무 많이 취했다는 것.

 

 

“잘자, 발레리!”...

“잘자,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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