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 19 (월)
득에게 1:30 까지 올 것을 약속하고 어젯밤 만나기로 약속한 갈라타 다리 끝 버스정류장에서 하칸을 기다렸다. 하칸이 묻는다. “준, 여기서 가까운 바이크 샵도 있긴 한데, 내가 가는 곳은 거기가 아니라 약 3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데 괜찮겠어? 나는 좀더 믿을 만한 곳을 추천해 주고 싶거든.” 아무 바이크샵에 맡기는 것보다 믿을 만한 곳에서 이뚜까9호를 정비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하칸이 타고온 V-STORM은 고속주행이 가능한 기종인 반면, 내 바이크는 못난 주인 만나서 만 몇천 km 동안 험난한 삶을 거쳐온지라 빠르게 달릴 수 없는 상태! 때문에 미리 복선을 깔아두어야 겠다. “음, 타이어와 핸들조향 상태가 좋지 않아. 빠르게 달리지 않는다면 충분히 갈 수 있어.” “그래, 그럼 가볼까?”
보스포러스 해협에 놓인 ‘제1교’를 건너서 이스탄불 시내를 벗어나 조금 더 달리니 다양한 자동차 메이커들의 AS 정비센터가 여럿 모여있는 단지가 나타났다. 단지의 골목길을 이리 저리 빠져나가며 하칸과 내가 다다른 곳은 SUZUKI 모터사이클 정비센터. 하칸의 바이크가 스즈키 제품이었기에 그런 듯 싶다. 무엇보다도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이곳 터키 이스탄불까지 한번도 교환하지 않은 엔진오일부터 갈아줘야 할 것 같다. 엔진오일 볼트를 열자 시커먼 오일이 마치 한약처럼 걸쭉하게 흘러내린다. 이런, 엔진오일 한 번 갈지 않고 이 먼 거리를 달려왔으니 이뚜까 9호가 심장병(!)에 걸릴만도 할텐데, 게으른 주인을 얹고 달리느라 얼마나 겔겔 거렸을까! 그래, 선심쓴다. 모튤오일 한 번 넣어줘야겠다.... 했으나, 모튤은 없고 ‘이폰’이라는 브랜드 오일만을 취급한단다.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시계를 보니 득과 약속한 시간 내에 돌아가기 어려울 것 같다. “득, 미안하다. 정비가 꽤 오래 걸릴 듯 하니, 저녁에 보자.”
타이어를 교환할 차례. 하칸이 조용히 나를 부른다. “준, 여기서 네 미쉘린 타이어를 교환하면 670TL을 내야하는데, 아까 우리가 만난 곳 근처에 있는 타이어 총판에서 교환하게 되면 500TL을 내면 돼.” “아, 그래? 그렇다면 그 총판에 가서 교환하는 게 낫겠는걸.” 엔진오일만 교환하고 150TL을 결제하려는데 카드가 먹통이다. 근처의 ATM 기기를 찾아가서 현금인출을 시도했지만 역시나 말을 듣지 않는다. 어쩐담. 막막하다. 문득 자켓 안 주머니에 꽁깃꽁깃 감춰놓은 비상금 250$가 떠올랐다. ‘안 되겠다. 이것이라도 받는지 물어야지.’ 센터에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하고 카드가 안 되니 $라도 받을 수 있겠냐고 묻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달러를 받겠다며 허허 웃는다. 다행이다라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100$을 건넸다. 하칸에게는 미안했지만 어찌 되었건 위기상황 모면!
타이어 교환가게에서도 카드결제가 안 되면 곤란할테니 500TL을 카드로 결제해 보고 정상적으로 승인이 되면 타이어를 교환하겠다고 하칸에게 미리 일러두었다. 이스탄불 미쉘린(바이크) 타이어 총판. 아까 스즈키 센터에서와 달리 500TL이 곧바로 결제된다. 이것 참, 카드가 나를 애간장 태웠다, 녹였다, 태웠다, 녹였다.... 주인을 가지고 논다. 아무튼 하칸 덕에 계속 신경쓰였던 타이어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하칸 고마워.
하칸과 헤어지고 돌아와서 석달만에 머리를 자르기로 했다. 3차 면접이 다음 달 15일에 있으니 지금 자르고 한 달 뒤에 다시 다듬으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숙소 빅애플에서 가까운 헤어샵이 어디냐고 물어보니 숙소 뒷편의 길을 쭉 따라가면 곧 찾을 수 있을 거라며 길을 안내해 준다. 헤어샵 앞, 나의 지저분한 모습을 꼭 보고 싶다던 팬들(?)의 기대를 뒤로한 채 샵 안으로 들어섰다. 터키어로, 영어로는 내가 어떻게 저떻게 해 달라고 하기 어려울 듯 싶어 모델사진을 보여달라고 한 다음, “이 모델처럼 잘라주세요”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난 안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보건대 이 사람처럼, 아니 저 모델처럼 다듬어 달라고 해 봤자, 결국에는 ‘나처럼’ 디자인 되더라는 사실을. 아무튼 ‘터키쉬 스타일’이라며 알코올 솜에 불을 붙여 구렛나루 옆으로 삐져나온 잔머리카락들을 그을리는 것으로 이발은 끝났다. 머리 깎는데 불쇼까지 동원되다니, 하하하 웃으며 연신 ‘베리 굿’ 이라고 할밖에. 그래도 20TL에 이정도면 됐지 뭐.
저녁시간. 조금 걷다가 괜찮은 음식점을 찾아갈까 했는데, 오늘따라 ‘걷기대장’인 득이 다리가 아프다고 한다. 낮에 이스탄불 여기저기를 구경다니느라 많이 힘이 빠졌나보다. 멀리 갈 수 없을 것 같기에 숙소와 멀지 않은 노변 카페에 앉아 저녁을 시켰다. 저녁 식사 후 토니, 스티브, 올자스, 그리고 월터에게 모처럼 문자를 보냈더니 토니로부터 이내 답이 온다. 월터가 현재 카자흐스탄(알마티)에 있는데 워터펌프가 고장나서 움직이질 못한다며 내가 예전에 워터펌프 수리를 받았던 센터를 물어본다. 토니에게 올자스의 연락처와 미샤의 정비소를 알려주는 답변을 보냈다. 토니가 다시 답한다. “... 그런데 준, 언제 런던에 오지? 진짜 펍을 가자는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이렇게 고마울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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