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대륙횡단(09.7.28~09.11.07)/터키(09.10.06~)

2009. 10. 18 (일)

SangJoon Lee 2009. 11. 23. 22:56

2009. 10. 18 (일)

 

 

이뚜까 9호 뒤에 85리터 짜리 ‘뚱땡이’ 롤백을 싣고 여행을 다니다 보니 지역과 지역, 도시와 도시를 이동할 때는 뒷자석에 누구를 태울 수가 없다. 때문에 득과 내가 도시를 여행하는 방법은, 나는 모터사이클로 득은 열차나 버스 등을 이용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스탄불은 그리스로 넘어가기 전 사실상 터키의 마지막 여행지가 되기에 가급적 함께 그리스까지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로 아침내내 고민하다가 불현듯 페리(배)가 떠올랐다. ‘그래, 페리로 아예 아테네까지 이동하자!’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ferrylines.com등의 웹사이트 등을 뒤져가며 이스탄불에서 아테네로 가는 배편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두 나라의 역사적 관계가 까칠하다지만 그 많은 페리들 중 이 두 곳을 오가는 노선이 없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물론 두 지역을 오가는 배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럭셔리한 초대형 크루즈선들 뿐! 수지맞지 않는 모터사이클 여행자를 태울 여객선은 아무리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젠장! 

...... 

 

오후. 어제 가 보지 못했던 ‘베요글루’ 지역과 그 근처에 위치한 갈라타 탑에 오르기로 하고 다리를 걸었다. 오늘도 갈라타 다리의 명물인 낚시꾼들은 어김없이 출석해서 다리와 둑의 빈 자리를 차지하고 강태공질을 한다. 그리고 다리 아래로는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는 페리들이 쉴새 없이 보스포러스를 가르며 달리고 있다. 조금 걸었다고 이내 쉬 피로해진다. 차 한 잔 마시며 쉬어야겠다. 갈라타 탑을 오르기 전 근처 찻집에서 챠이 한 잔 마시는데 찻잔을 비우자 내쫓듯이 찻잔을 걷어간다. 이게 뭐 하자는 거지? 한 잔 더 시키지 않을 거면 나가라는 뜻인지, 테이블을 깨끗하게 치워주기 위한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어차피 찻집이 목적지가 아니었기에 그냥 일어섰다. (사실, 전자라는 생각에 뜨끔해서 일어선 것이었지만...)

 

 

10TL을 내고 갈라타 탑에 올랐다. 이스탄불의 지형이 상대적으로 평평해서인지 현대식 타워에 비해 높지 않은 조적식 탑임에도 꼭대기에서 바라보자 이스탄불의 전경이 한 눈에 펼쳐진다. 그리고 여기저기 보이는 뾰족한 모스크의 첨탑들이 세련된 이슬람 국가 터키를 내게 다시금 상기시켜 주었다. 꼭대기를 돌던 중, 낮익은 얼굴 둘을 마주하게 되었다. 남부 카쉬에서 헤어진 유이치와 야마가 그들이었으니 이로써 이들과의 만남이 세 번 째가 되었다. 하.하.하. 나와 마찬가지로 이스탄불이 터키에서의 마지막 여행이 될 것이란다. 그리고 유이치는 포르투갈로, 야마는 루마니아로 각자 여행을 떠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아, 그래? 나는 여기 이스탄불 여행을 마치면 곧바로 그리스로 들어갈 예정이야.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어느 하늘 아래서 다시 만나겠지. Have a nice trip!” 러시아에서 만났던 발레리가 헤어지기 전 내게 했줬던 말을 그들에게 건네는 것으로 우리의 ‘인연’에 인사를 마쳤다. 

 

 

서쪽 너머로 해가 천천히 내려 앉고 있었다. 배꼽시계는 해가 저물어가는 것을 아는지 어쩐지 오늘도 어김없이 울려댄다. “배고프다, 저녁먹자!” 득도 슬슬 배가 고팠는지 내가 말하자 이내 동의하며 갈라타 탑을 내려왔다. 베요글루에 있는 (우리네 명동과 같은) 이스티크랄 거리를 찾으러 가다가 아무 가게나 들어가서 배꼽시계를 잠재워얄 듯 싶다. 탑에서 똑바로 나 있는 골목길을 걷는 중 작은 케밥집을 발견했다. 케밥집 안을 들여다보니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이서 가게를 꾸려가시는 것처럼 보였다. 말(영어)이 통할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손짓발짓 해가면서 주문을 하면 되지 않겠나 싶어 무작정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예감은 적중했다. 나는 영어+우리말로, 할머니는 터키어로... 하지만 역시나 어르신들의 경험은 무시할 수 없다. 얘(나)가 주문은 하는 것 같긴 한데,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자 곧바로 조리대 아래의 냉장고를 열어보이며 재료들을 하나하나 가르키며 묻는다. 나 역시 무슨 말인지 모르니 차라리 재료를 보며 주문하는 편이 더 낫다 싶었는데, 연륜에서 오는 ‘눈치9단’의 주인 할머니가 미리 그렇게 해 주시니 고마울 밖에.

 

 

뱃속에 든든하게 연료-‘식사(밥)=연료’라는 지극히 기계적인 사고, 미식가가 되기는 글렀다-를 채우고 나서 다시금 이스티크랄 거리 찾기의 터벅터벅 방랑을 시작했다. 하지만 어둡다보니 이내 길을 잃어버렸다. 숙소에서 얻은 지도로는 방향을 알아채기가 어려웠다. “일단 헤메자. 그러다 보면 답이 나오겠지, 뭐.”

 

 

얼마나 걸었을까, TRT라 적힌 간판에 불을 밝히고 있는 건물 앞의 광장같이 보이는 공터에 앉아 보스포러스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쉬고 있었을 때였다. 마침 공터 저 편에 바이크들이 여럿 주차된 곳에서 라이더 둘이 자신의 바이크를 막 타려는 것이 보였다. 중형 바이크다. 13,000km를 달려온 이뚜까 9호의 엔진오일과 타이어를 교환해야 할 시기가 됐기에 그들로부터 바이크샵 등의 위치가 어디인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곧바로 V-STORM을 타고 있는 그들에게 달려갔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모터사이클을 타고 여행을 온 준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여기까지 모터사이클로요?” “예, 제 BMW F 650과 함께 대륙횡단을 하고 있어요.” “아, 그렇군요.” 같은 라이더로서 이내 급호감 모드가 형성된다. 내가 엔진오일과 타이어를 갈고 싶다, 혹시 괜찮은 바이크 센터나 딜러샵을 알려줄 수 있느냐라고 묻자 한 명이 여기 저기에 전화를 건다. 그리고 지도가 있는지 묻는다. “예, 여기 이스탄불 시내 지도가.” “아, 이 도로를 쭉 따라서 가다보면 이 지점쯤에 미쉘린 타이어 대리점이 있어요. 그리고 엔진오일 교환은 조금 더 내려가 이쯤에 있는 샵에서 할 수 있을 거예요.”라며 볼펜으로 지도의 길 위에 두 군데 점을 찍어준다. “아, 네 감사합니다.”

 

 

막 헤어지려고 할 찰나, 한 명이 내 연락처를 묻는다. 그리고는 내일 ‘데이오프’니 자신과 함께 바이크 정비를 하자고 말해온다. 이런 럭키가! 자신을 ‘하칸’이라고 알려준 라이더와 내일 갈라타 다리 북쪽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만나기로 하고 기쁜 마음에 헤어졌다. 주소도 없이 대략적인 위치만 볼펜으로 찍어놓은 지도 한 장 딸랑 가지고 인구 1,600만의 대도시 안에서 바이크 정비소를 찾기를 상상해보라. 아니, 1,600만은 둘째치고 당장 1,000만 서울에서 가게 찾기를 생각해 보면 쉬울 듯 싶다. 그래, 또 한명의 천사를 터키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하칸 일행과 헤어진 후, 명동(!) 찾기를 하는 데 의외로 바로 옆 블럭에 위치해 있었다. 오늘이 일요일이라 그랬는지, 이스티크랄 거리는 말 그대로 人山人海. 이런 왁자지껄함이 왠지 좋다. 주체적으로 자란 머리 벌초가 필요할 것 같아, 헤어샵이 있는지 거리를 따라 걸으며 주위를 두리번 거려봤지만 미용실은 커녕 이발소조차 보이지 않는다. 아, 명동에도 이발소는 없구나. 아무튼...

 

걷고, 걷고, 또 걷다보니 어느 새 이스탄불의 중심, 탁심광장까지 오게 되었다. 광장 한 가운데 서있는 근대 터키 건국의 아버지들. 멍 하니 광장 펜스에 걸터앉아 그 동상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국부 케말파샤와 동지들은 터키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를 논의하는 듯 서로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분명 초대 대통령이 존재하건만 국부라는 칭호가 붙여지지 않고 있는 우리의 현실과 오버랩 되면서 부러움과 서글품이 동시에 스쳐간다.  

 

 

탁심광장에서부터 이스티크랄 거리를 관통해 운행하는 한 칸짜리 붉은색 경전철(트램)이 예쁘다.

탈까? 표 사는 법을 모르겠다. 걷자.

(트램타기, 갈라타 다리에서부터 술탄아흐멧까지 오가는 트램을 타는 것으로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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