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26 (토)
오늘은 마샤드를 떠나 이란 중부지역에 있는 ‘야즈드(야츠, Yazd)’로 향하는 날이다. 마샤드-고나바드-페르도우스-타바스-야즈드로 이어지는 900km의 길. 하루만에 가기는 무리일 것 같다.
발리 아저씨 집에 머무는 동안 아침, 저녁으로 먹어 온 요거트의 효과일까. 새벽부터 화장실, 화장실, 또 화장실이다.
우리의 토요일이 여기의 월요일이다보니 어제와 달리 길에 활기가 넘친다. 발리 아저씨가 안내해 준 환전소에서 괜찮은 환율로 100$(98,300투만. 약 1,000투만/$)을 환전했다.
이란은 공식적 화폐단위와 일상적 화폐단위가 있다. 공식적 화폐단위로는 ‘리얄’을 사용하고, 일상적 화폐단위로는 10리얄을 1투만으로 하는 ‘투만’을 사용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생수 한 병을 사고 얼마냐고 물었을 때, ‘three’라고 했다면 그건 300리얄(36원)이 아닌 300투만(360원), 즉 3,000리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눈치껏, 요령껏, 상식적으로 해석해서 알아들어야 한다. 아무튼 환전 덕분에 당분간은 기름걱정과 군것질 못할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그리고 SIM카드 구입을 위해 발리 아저씨와 함께 이란셀(이동통신사) 판매 대리점에 들렀지만, 외국인은 SIM카드를 구입할 수 없다면서 이란셀 서비스센터에 직접 방문해 보라고 이야기 한다.
론리플래닛에서 ‘주유카드’ 얘기로 잔뜩 겁을 주어서 어떻게 해야 하나 몰랐는데, 주유카드가 없더라도 주유소 직원에게 주유카드 없다고 말하면 알아서 1L에 4,000리얄(400투만)로 계산해서 기름을 넣어준다. 리얄로 표시된 주유기 가격에 ‘곱하기 4’만 하면 된다. ‘learning by doing’이다. 지금까지 국경을 넘어오면서 해 왔듯이, 돈이건 휘발유이건 미리 일정수준을 준비해 두고 여기서 문제가 될 것은 여기서 해결하자는 방식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었다. 마치 투르크메니스탄을 지나기 전 기름을 가득 채우고 넘어온 것처럼.
여하간 이란의 주유카드와 관련해서, 이란사람은 주유카드를 가지고서 1L에 100투만(1,000리얄, 120원)의 가격으로 기름을 넣는데, 이 제도가 악용되어 공공연한 암시장을 만들고 있었다. 즉 자동차는 있되 별로 운행하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주유소에서 리터당 2~300투만에 기름을 사서, 주유카드가 없거니 주유카드의 한도를 넘어선 사람들에게 400투만에 판매하는 것이 그것이다. 100투만에 비하면 나는 네 배나 비싸게 넣는 것이지만, 우리 돈으로 환전해 보면 리터당 500원밖에 하지 않으니 여전히 엄청 싸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란 전국의 모든 주유소가 ‘동일한’ 기름값이다.
출발 전 주유소 옆의 빵집에서 갓 구워낸 ‘누네상각’을 한 개 사서 가방 안에 넣어 가지고 다닐 생각으로 빵집을 향했는데, 상각빵을 여러 개 산 청년이 ‘주몽 왔다’면서 내게 하나를 선물로 그냥 준다. 비록 개당 500리얄(60원)밖에 안 하는 빵이지만 바삭함이 최고이기에 감사하다고 미소지으며 받아서 바이크 탱크백에 넣었다. 이것으로 점심 겸저녁식사 준비는 끝.
마샤드를 떠나 두 시간 정도 달린 다음 도로 옆 휴게소에 앉아 아까 받은 상각을 점심으로 하려니 가족단위의 이란인들이 다가와서 같이 점심을 먹자고 권한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멜론인 디냐를 크게 잘라서 먹으라며 건네주었다. 이란의 디냐는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의 디냐와 달리 퍼석퍼석한 느낌. 그래도 맛있다는 것은 변함없었다.
디냐를 내게 준 일행이 이런저런 질문을 하면서 특히 한국인들은 이란인들을 어떻게 보는지 물어본다. 주로 정치적인 측면을.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싶다가, 진보적 지식인들의 입장을 약간 섞어서 한국 대중들의 생각이 이렇다고 (가공해서) 전해주니 만족해하는 표정. 단순히 이란에 대해 어떤 느낌이냐보다 국제정치적으로 외국인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궁금해 한다는 게 오히려 내겐 신선했다. 그런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을 보니 상당히 인텔리전트인 듯.
마샤드를 250km 정도 지나니 조금씩 해가 저문다. 여기는 투르크메니스탄의 아쉬그밧과 같은 경도이면서도 서쪽으로 1,000km 떨어진 테헤란의 시간을 표준시로 사용하다보니, 동부 이란은 해가 일찍 떨어진다. 다섯시가 되면 바이크를 멈추고 잠자리를 찾아 봐야 한다. 이란에서는 지금까지의 스탄국가들과 달리 집 구조가 사람이 살고 있는지를 밖에서 볼 수도 없고, 또 동네에 사람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더군다나 러시아에서부터 투르크메니스탄까지는 숙소를 찾고 싶으면 지나가는 사람에게 ‘그제 가스티니짜?(숙박시설이 어디있나요?)’라고 물어보면 됐지만, 파시(페르시아어)를 전혀 모르는 나로서는 난감 그 자체이다. 다행히 이란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캠핑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기에 텐트를 칠 만한 장소만 찾으면 그곳이 바로 잠자리라는 생각에 텐트칠 곳 찾기에 나섰다.
다섯시 반, ‘고나바드’ 앞의 도로검문소에 멈춰 검문 중인 경찰에게 텐트 그림까지 그려가며 ‘텐트! 캠핑!’이라고 외쳐보며 캠핑장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지만 웃으면서 경찰서만 가리킨다. 영어가 안 통하는 듯 싶다. 모르겠다, 경찰서 옆에 텐트를 칠 수 있는지 물어보는 수밖에.
경찰서(지구대) 옆에 이뚜까 9호를 세워두고 다시 한번 ‘텐트, 텐트!’를 외쳤다. 어디에서 왔냐고 묻는다. “코리아! 주몽!” 반응이 바로 온다. “오! 쥬몬!” 요새 유행어로 ‘급호감’ 모드로 변하더니 건물 한 귀퉁이에 텐트를 쳐도 된단다. 마샤드의 길을 걸을 때마다 사람들이 ‘쥬몬! 쥬몬!’ 하며 내게 아는 척을 했는데, 드라마의 효과가 이 정도일 줄이야. 사극물은 ‘장금’, ‘주몽’이 인기절정이고, 신세대 로맨스 드라마로는 ‘김삼순’이 대세인 것 같았다. 하지만 김삼순은 젊은 여성들에게만 인기 드라마인 듯.
텐트를 치고 시계를 보니 어느덧 저녁 7시. 책임자(경감)로 보이는 경찰분이 금일 당직을 마치고 내일 아침에 자신도 나와 같은 방향(페르도우스)으로 간다면서 아침에 함께 출발하자고 말한다. 고마울 수밖에.
...별달리 할 일이 없다. 현 시간부로 인화단결 취침!
'유라시아대륙횡단(09.7.28~09.11.07) > 이란(09.09.23~)'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09. 9. 28 (월) (0) | 2009.10.13 |
|---|---|
| 2009. 9. 27 (일) (0) | 2009.10.13 |
| 2009. 9. 25 (금) (0) | 2009.10.13 |
| 2009. 9. 24 (목) (0) | 2009.10.13 |
| 2009. 9. 23 (수) (0) | 2009.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