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대륙횡단(09.7.28~09.11.07)/이란(09.09.23~)

2009. 9. 24 (목)

SangJoon Lee 2009. 10. 13. 05:51

2009. 9. 24 (목)

 

 

 새벽 일찍부터 네-독 커플이 투르크메니스탄을 향해 떠났다. 아침. 어디선가 들려오는 확성기 소리-모스크에서 들리는 새벽예배 소리-에 깨어보니 어젯밤 그들이 얘기했던 대로 엽서에 자신들의 이메일 주소와 함께 암스테르담에 들르거든 ‘카우치서핑(www.couchsurfing.com)’을 찾지 말고 자신들에게 연락을 하라는 짧은 인사를 남겨 놓았다. 고마울 수가.

 

적당히 게으름을 피운 다음 일어나서 마샤드를 둘러보고자 발리 아저씨의 집을 나섰다. 오후 2시인데 거리의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았다. 게다가 상점의 모든 글자가 이란어인 ‘파시(페르시안)’. 숫자조차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라비아 숫자가 아니라 파시 숫자로 적혀 있다. 1과 9를 제외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아라비아 숫자와 닮은 것이 하나도 없다.

 

도로 위는 어수선하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경적. 너 경적 울렸냐, 그럼 나도 올린다라는 심보같다. 길 건너기, 유턴, 사거리 회전 등의 모든 것들이 적당히 눈치봐서 괜찮겠다 싶으면 그대로 이루어진다. 그 중에 압권은 소형 모터사이클들. 100~125cc의 모터사이클들이 미꾸라지 마냥 이리저리 도로 위를 쑤시고 다니는데도 모든 게 만사형통이다. 우리나라에서 배달용으로 사용되는 ‘시티백’ 모터사이클 수백 수천 대가 도로 위를 휘젓고 다니는 것을 상상해 보라. 내 눈에 보기에는 무질서하기만 한데도 보행자건 자동차건 모터사이클이건 사고 없이 물 흐르듯이 자기의 갈 길을 나아간다. 단지 횡단보도 위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는 ‘반문명적인’ 나의 모습만이 그들의 눈에 보여질 뿐.

 

 

가끔씩 작은 바이크에 가족 전체가 타고 다닌다. 맨 앞에는 위엄있게 핸들을 잡고 운전중인 아빠, 아빠 뒤에는 첫째 아이, 첫째 아이 뒤에는 아직 아장아장 걸을 법한 둘째 아이, 그리고 맨 뒤에 검은색 차도르를 걸치고 있는 엄마. 우리나라에서 폭주족 청소년들 셋이 모터사이클 한 대에 올라탄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나타내는 ‘삼치기’는 물론이거니와 ‘사치기’ 역시 이곳에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광경이었다. 가끔씩 남녀가 모터사이클을 타고 연애하는 모습도 보인다. 사실 연애인지 아니면 이미 결혼한 사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젊은 남녀가 타고 있는 모터사이클은 어김없이 두 사람의 얼굴에 웃음을 함께 싣고 달린다.

 

이란의 첫 모습에서 내게 문화적 차이를 안겨다 준 것은 바로 모든 여성들이 차고 있는 차도르(히잡)였다. 그렇지만 흔히 아프가니스탄의 반인권적 상황을 TV에서 보여줄 때 우리가 접하듯이 눈 부분만 망사로 볼 수 있도록 한 극단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얼굴을 전부 가리고 눈만 드러낸 게 아니라 머리에 스카프를 쓰고 팔과 다리를 가리는 정도였다. 그럼에도 내게는 이슬람 국가에 내가 와 있구나를 직접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모습이었다.

......

 

마샤드의 자랑, ‘하람 모스크’를 찾아갔다. 그러나 카메라를 들고는 모스크 안으로 출입을 할 수 없다고 입구에 적혀있다. 똑딱이 카메라를 가지고 간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발만 동동 구르다가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카메라를 맡기고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데 어디에 맡겨야 하는지 몰라서 모스크 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내일 다시 카메라 없이 모스크를 찾아야겠다.

 

‘꿩대신 닭’이라고 모스크에 들어가지 못한 분풀이를 모스크 옆의 ‘레자바자’ 구경으로 대신했다. 그리고 처음 맛본 이란콜라, ‘잠잠’(나는 왜 저 마크를 볼 때마다 ‘불순한’ 픽토그램이 상상되는 걸까? 아, 이 타락한 영혼이여). 저녁 다섯시쯤 되자 나는 발걸음을 돌려 발리아저씨 집으로 향했는데, 나를 제외한 길 위의 모든 사람들이 하람 모스크 한 방향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이들의 예배의식을 볼 수 없다니.

......

 

네덜란드 여행자 프랭크가 발리아저씨 댁을 떠났다. 그리고 그의 침대를 새로운 캐나다 여행자 그레이엄이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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