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파블로다르 역에 가서 남은 루불을 텡게(Tg)로 환전했다. 계산해 보니 450km 떨어진 수도 ‘아스타나’까지 갈 기름값은 충당할 수 있을 것 같다. 연료비(그리고 밥값)가 준비되자 곧바로 아스타나를 향해 출발했다. 그렇지만 GPS가 없는 내게 크건 작건 역시나 도시 안은 여전히 미로다. 파블로다르에서 아스타나로 가는 길을 몰라 여기 저기 묻고 있는데, 택시 승객이 창문을 열더니 어디서 왔는지와 어디로 가는지를 물어 한국에서 왔고 아스타나로 간다고 답하니 자신들을 따라오라며 손짓한다. 그리고선 택시기사에게 아스타나 가는 길 앞까지 택시를 우선 안내하란다. 택시 ‘승객’ 덕분에 파블로다르를 별다른 어려움 없이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작지만 귀여운 한국의 이륜차 번호판, 그리고 이뚜까 9호에 바리바리 실린 짐들은 어디에서나 현지인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들의 악의없는 도움을 받는다. 다큐멘터리 ‘long way round’로 모터사이클 세계여행을 널리 알려준 ‘이완 맥그리거’에게 감사해야 할 것 같다.
달리는 450km의 도로가 직선에 가깝다보니 많이 졸립다. 110~120km의 속도로 주행하는데도 졸릴 수 있구나 싶다. 정말 직선이다. 그리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평평한 풍경이 펼쳐진다. 저 앞을 향해 수평선을 좌우로 가르는 검은색 아스팔트만이 이곳이 도로임을 말해 주는 듯 싶다. 게다가 오늘따라 해는 왜 이렇게 쨍쨍 내리 쬐는지 모르겠다.
바이크를 세우고 갓길에서 소변을 보는데 누군가 차를 세워 다가온다. 현지인이다. 호기심 섞인 표정으로 몇 마디 건네온다. 알 턱이 있나. “야 니엣 가바류 빠루스끼(나 러시아어 못 해요)!” 그래도 호기심에 연신 바이크에 앉아보고 헬멧도 써 보고 한다. 이들의 호의를 지렛대 삼아 핸드폰을 잠시 빌린 다음 아스타나에서 나를 맞이해 줄 이문배 서기관께 전화했다. “서기관님, 안녕하세요.
......
아스타나에 들어왔다. 역시나 도시는 복잡하다. 보이는 가장 큰 건물 앞에 바이크를 세워놓고 주변을 살펴보니 자가용으로 택시영업을 하는 카자흐스탄 사람이 신기한 듯 쳐다보며 어디서 왔는지 ‘레퍼토리’처럼 묻는다. 한국에서 바이크를 타고 러시아를 거쳐서 왔다고 웃음과 함께 ‘레코드 테잎’의 반복재생 버튼을 눌러댔다. 그가 연신 큰소리로 내게 말을 걸자 아까부터 계속 내 주변에 와서 이뚜까 9호를 보고 싶어하던 다른 택시기사도 다가와서 호감을 보인다.
이때다. 내 핸드폰은 러시아폰이라서 전화가 안 된다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크게 떠들고 있는 예의 택시기사에게 핸드폰을 빌려달라고 하자 “다, 다! 다바이!(물론, 물론!)”라며 선뜻 내어준다. 호기심을 무기삼아 낮선 현지인에게 핸드폰 빌리기는 이제 일도 아니다. 나도 많이 능글맞게 변해간다. “서기관님,
카자흐스탄의 新수도 아스타나. 뭐든지 새롭고, 크고, 깨끗하다. 그리고 도로도 계획도시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격자형태다. 사람들에게 몇 번 묻자 메가센터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허기진 배도 채우고, 아까 그 택시기사가 알려준 대로 BeeLine 심카드(카자흐스탄 핸드폰)를 구입하기 위해 주차장에 이뚜까 9호를 세워둔 후 메가센터로 들어갔다. 그런데 문 앞에서 제지를 당한다. 내가 입고 있는 라이딩 자켓이 지저분하기 때문이란다. 이런, 황당스러운 경우가. 이 동네 룰이 그렇다면 기지를 발휘할 수밖에. ‘방코맛(현금인출기)’이라 말하며 1층에 있는 현금인출기에 가려고 한다고 하자 OK라며 들여보낸다. 일단 들어섰으니 현금인출부터 시도. 첫 번째 ATM, 안 된다. 두 번째 ATM, 역시나 안 된다. 세 번째 ATM, 마찬가지로 안 된다. 네 번째 ATM에 가서야 현금인출에 성공했다. ‘마에스트로’, 혹은 ‘사이러스’ 마크가 붙은 ATM에 가더라도 종종 인출이 안 될 때가 많다.
아무튼 현금 인출을 한 다음, BeeLine 매장에 들어가 심카드를 구입해 ‘+82...’를 누른다. “아, 아버지. 예, 잘 도착했습니다. 예? 어떤 여자가 계속 뭐라고 똑같은 얘기만 하더라고요? 아, 제가 러시아에서 카자흐스탄으로 넘어올 때 예전 러시아 번호로 저에게 전화를 하셨나 봐요. 당분간 카자흐스탄에서는 이 번호를 사용할 거예요. 예, 예. 또 전화 드릴게요.”
빵과 우유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메가센터 앞의 공터에 앉아 가져간 론리플래닛 ‘Central Asia’판을 읽고 있자니, 외국인 한 사람이 다가오는데 느낌이 카자흐스탄사람 같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Hi!”라는 인사를 내게 건넨다. 짐을 가득 싣고 자그마한 외국 번호판을 붙이고 있는 이뚜까 9호가 신기해서 계속 보고 있었단다. 영국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아내(Alison)과 함께 이곳 아스타나에 오게 된 ‘스티브’(Steve)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바이크 매니아라서 내게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라이더는 라이더를 알아보고 이해한다. 특히나 길건 짧건 국경을 넘는 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라이더들은 더더욱 그런 것 같다. 이곳 아스타나에 며칠이나 있을 계획이냐고 묻기에 사나흘 정도 있을 거라고 대답하자, 낮에는 시간이 많이 있으니까 전화하라며 핸드폰 연락처를 건네준다.
잠시 후, 이문배 서기관을 만났다. 저녁은 해결했냐, 숙소는 정했냐며 안부부터 묻는다. 서울에서 붙여줄 택배를 대신 받아주는 것도 고마운데, 불쑥 나타나 신세지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얼버무리며 “예”라고 하자, “일단 오늘밤은 우리집으로 갑시다!”라며 앞장선다. 이 서기관 댁에서 하룻밤을 신세지게 되었다. 후배 주환의 누님께서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 일부러 저녁을 차려주신다. 오랜만에 맛보는 된장국과 김치, 그리고 처음 먹어보는 과일 ‘디냐’.
이 서기관님 가족, 그리고 후배 주환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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