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 6 (화)
저 멀리 보였던 눈덮인 산이 터키, 이란, 아제르바이잔에 걸쳐있는 ‘아라라트 산’이라고 알리가 알려주었다. 바로 그 아라라트 산을 바라보며 국경까지 달렸다. 가벼운 와인딩 코스. 하지만 잠시 정신을 놓고 여유를 부리다가 마주오는 승용차와 부딪칠뻔 했다. 순간 닭살이 돋으면서 무릎 뒤 오금이 찌릿찌릿해 온다. 식겁해야 마땅한 순간이 지나자, 헬멧 속에서 나만이 들을 수 있는 큰 소리로 미친놈마냥 빵하고 웃어버린다.
이란의 끝, 바자르간. 터키의 ‘악명높은’ 휘발유값을 들어왔기에 이곳 국경마을에서 기름을 가득 채웠다. 주유소 직원이 이란쪽인지 터키쪽인지 어디로 가냐고 묻는다. 불현듯 떠오른 투르크메니스탄 국경 주유소에서의 경험. 이란 여행을 마치고 터키로 갈 것이라고 하면 100원 내면 될 것을 200원 내라고 할 듯한 분위기다. 이란쪽으로 갈 것이라고 하니 주유기에 찍힌 금액 곱하기 4를 한 ‘투 호메이니’(2만 리얄)를 외친다. 그래도 3만 리얄(3천 투만)이 남으니, 이럴 줄 알았으면 알리집 드럼통에 있던 휘발유를 그로부터 사서 넣고 그에게 남은 5만 리얄을 마저 줄 것을 그랬나보다.
......
이란(바자르간)-터키(줄불락) 사이의 국경. 지금까지의 다른 국경과 달리 시장통이 따로 없다. 내가 국경에 온 것인지 바자에 온 것인지, 국경넘기가 생소한 ‘섬나라’ 대한민국에서 온 촌놈의 눈에는 마냥 어수선할 뿐이었다. 게다가 어디서 어떤 서류를 처리해야할 지 안내판도, 안내원도 없다.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는 수밖에. 세관직원 뱃지를 가슴에 달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이란에서 터키로 바이크를 타고 넘어가려고 한다고 말하니 사무실 저쪽으로 가서 물어보라고 알려준다. 사무실로 가자 세관직원인 듯 한 사람이 주몽을 외치면서 이것저것 도와준다. 어쨋거나 그의 도움으로 손쉽게 서류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란의 국경을 막 넘으려는 순간, 그가 이런다. “이봐, 도와줬는데, 20$든, 20euro 정도는 줘야지 않나?” 기분이 언짢아졌다. 모터사이클 여행자들의 필수 웹사이트 ‘horizonsunlimited’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란에서 국경통과(출국)시 직원인 듯 한 사람들이 도움을 주고 돈을 요구하니 단호하게 거부하라는 충고를. 뭐랄까, 말다툼하기 싫어졌다고 해야할까. 그냥 ‘똥 밟았다’는 생각으로 주머니에 있던 10$에 주유소에서 남았던 3만 리얄을 그에게 건네고 곧바로 이란 국경을 넘어섰다. 다 좋았던 이란에 대한 기억, 세관 직원인지 아니면 브로커인지 모를 그가 보기좋게 재를 뿌린 셈이 됐다. 그래도 좋은 기억이 훨씬 크니 다행이다.
......
이란과 터키 사이. 터키 국경 직원들이 나와 이뚜까 9호를 보더니 닫았던 철문을 열어준다. 터키에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딱 두 가지 서류를 보여달란다. 이륜차 등록증서(영문)와 그린카드(보험증). 등록증서야 있지만 그린카드가 있을리 만무하다. 직원이 알려준 대로, 터키 측 국경 한 켠에 마련된 보험회사(AXA)에 가서 9.5TL(터키리라)를 내고 그린카드를 만들고 나니 서류심사가 끝! 까르네는? 필요없단다. 내가 왜 까르네를 받으려고 애썼는지...
터키로 들어서자 아라라트 산을 더 크고 웅장하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잘 닦인 도로. 지금까지의 스탄국가들 및 이란과 달리 산과 계곡에 나무도 많고 물도 많다. 아기자기한 모습, 웅장한 모습, 그리고 황량한 모습 등등. ‘동부 아나톨리아 지역을 여행하면 결코 후회하지 않을 거야’ 라던 세마의 추천이 빈말이 아니었다. 조금 더 달리자 오른편으로 반 호수가 펼쳐진다. “우와, 멋지다!” 10,000km 넘게 달려오면서 커다란 호수들을 수 없이 보아 왔지만 매번 탄성이 나온다. 반 호수 옆으로 바이크를 대고 잠시 쉬면서 알리의 부인이 싸준 사과와 오이로 점심을 해결했다.
사과꼭지를 반 호수 저 편으로 던지고선 다시금 출발을 재촉했다. 달리고 달려 반 시내로 들어섰는데 시내는 역시 복잡할 뿐이다. 이란에서 터키로 오기 전, 세마에게 내 여행일정과 경로를 알려주면서 가장 ‘저렴한’ 숙소를 물었는데 그녀가 각각 알려준 숙소와 론리플래닛 상의 숙소가 상당부분 일치한다. 아무튼 그 숙소에 머물기로 했다. 그리고 터키에 왔으니 터키 핸드폰을 개설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저녁을 먹고서 심카드를 샀다. 그런데, 전화가 안 걸린다. 벌써 그 핸드폰 가게는 묻을 닫았을 터. 젠장, 내일 아침에 반을 떠나기 전 다시 한 번 그 가게에 들러야할 것 같다.
'유라시아대륙횡단(09.7.28~09.11.07) > 터키(09.10.06~)'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9. 10. 11 (일) (0) | 2009.10.30 |
---|---|
2009. 10. 10 (토) (0) | 2009.10.30 |
To. 어머니께 (0) | 2009.10.30 |
2009. 10. 8 (목) (0) | 2009.10.30 |
2009. 10. 7 (수) (0) | 2009.1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