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대륙횡단(09.7.28~09.11.07)/이란(09.09.23~)

2009. 9. 29 (화)

SangJoon Lee 2009. 10. 14. 22:28

2009. 9. 29 (화)

 

 

여행을 시작하기 전, 친구 득에게 나 이러이러한 여행을 할 것이라고 말하며 여행경로를 대략 얘기했는데, ‘네가 이란에 가게 되거든 이스파한에 한 번 가보길 권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란에 들어오면 무조건 ‘이스파한’을 목적지로 삼고자 했다. 이스파한이 어떤 곳인지조차 모른 채. 오늘은 야즈드를 떠나 ‘세상의 절반’이라던 그 이스파한으로 이뚜까 9호를 몰았다.

 

야즈드를 떠나기 전 시내의 주유소를 찾아갔는데 그곳에서 현지분의 도움으로 리터당 100투만에 기름을 넣을 수가 있었다. 10리터 채우는 데 우리돈으로 단지 1,200원밖에 안 들었으니 좋은 일이긴 한데 한편으로는 서러워졌다. 서울에서 (10리터가 아닌, 1리터당) 기름값 1,200원이 어느 시절 이야기인지조차 기억나지 않으니 말이다.

 

 

 

야즈드에서 이스파한으로 가는 내내 강한 측풍이 불어왔다. 그 바람을 헤쳐가며 전진하기 위해서 바람 불어오는 쪽으로 이뚜까 9호를 기울인 채 계속 달렸더니 허리가 다 아파온다. 이런 측풍, 아스타나~알마티 이후 오랜만에 겪어본다. 이스파한을 150km 남겨둔 길 위에서 휴게소 비슷한 식당을 발견하고 점심을 해결하고자 바이크를 세웠다. 이곳에서도 아니나 다를까, 나는 ‘유명인사’이올시다. 식당 안에 있던 한 트럭기사가 내 카메라를 보더니 내 사진 한 장을 찍어 주겠단다. 나야 좋지. 찰칵, 어디보자. 어이구, 나를 찍어주는 게 아니라 나를 배경삼아 자신의 트럭을 찍었다.

 

 

이스파한에서 저렴한 축에 드는 여행자 숙소 ‘아미르카비르’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뚜까 9호를 재워 줄 공간이 마땅치 않다. 바이크는 어디에 세워야 하는지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저 아래 200m 정도 내려가면 공영주차장이 있다고 알려준다. 이뚜까 9호와 200m나 떨어져 지내야 한다니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대로변에 붙어 있는 숙소인 까닭에 그곳 문 앞에 이뚜까 9호를 세워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주차장을 찾아찾아 200m, 300m, 400m 아래로 내려가 보지만 내 눈에 주차장은 보이지 않는다. 마음씨 좋은 사람 눈에만 보이는 주차장인가? 주인장이 말한 공영주차장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모른 채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를 한 다음 커다랗게 주차장 비슷하게 보이는 건물로 들어가, 이곳에 바이크를 세워도 되냐고 물으니 여기는 공영주차장이 아니라 은행전용 주차장이라면서 나가라고 손사래질을 친다. 능글맞은 웃음과 비굴한 눈빛을 섞어가며 ‘제발 주몽나라의 이 이방인에게 아량을 베푸소서’식의 애원-애니메이션 영화 ‘슈렉2’의 고양이 눈빛을 기억하시는지-을 펼치자 자신을 ‘알리레자’라고 소개하는 은행직원 한 명이 유료 주차장이 은행건물 뒤편에 있다며 자신을 따라오라고 일러준다. 다행히 유료 주차장이 개방공간이 아니라 폐쇄공간인 까닭에 마음 편하게 이뚜까 9호를 맡겨놓을 수 있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무거운 롤백을 낑낑대며 메고 내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발리 아저씨 집에서 만났던 여행자 프랭크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나도 “와우!”, 프랭크도 “와우!” 하긴, 유럽 및 영어권 국가 여행자들 대부분이 파란색 ‘론리플래닛’을, 일본여행자들 대부분이 노란색의 ‘세계를 가다’를 들고 여행을 다니니 이것이 신기한 일만도 아니다...마는. 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에 있을 때 이고르를 만나서도 느꼈지만, 세상이란 곳이 넓다가도 좁다. 아무튼 신기하고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등받이에 기댄 채 타는 ‘리큠번트 자전거’로 5년짜리 세계여행을 계획, 실행 9개월째인 스위스인 마쿠가 같은 방에서 나를 맞는다. 마쿠의 침대 위에 프랑스어로 된 론리플래닛 이란편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선 그가 프랑스어권 스위스에서 온 것을 짐작할 수 있었

다. 작은 나라 스위스임에도 한 나라 안에서 사용되는 ‘공식언어’만 독일어, 프랑스어, 이태리어, 그리고 스위스어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을 뿐이다. 프랑스어권에서 왔기 때문일까, 마쿠와 대화를 나누는 중간중간에 ‘possible’, ‘impossible’을 ‘포싸이블’, ‘임포싸이블’이라고 발음한다. 하지만 단어 발음과 상관없이 50kg가까이 나가는 자신의 짐들을 소개하면서 ‘이것은 나의 사무실, 이 짐은 내 주방, 저 짐은 내 침대’라고 할 때마다 왠지 그가 장거리-장기간 세계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영웅으로 느껴졌다.

 

 

마쿠, 프랭크와 함께 출출한 배를 채우고자 숙소 앞 샌드위치 가게로 향했다. 이란의 샌드위치 가게는 샌드위치에 넣을 재료가 정육점의 유리 냉장고 같은 데에 진열되어 있고 그것을 보고서는 소비자가 고를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인데, 말로만 듣던 양의 ‘뇌’가 작은 주먹만한 크기로 쭈글쭈글한 뇌 주름이 그대로 잡혀 있는 채 냉장고 안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조금 징그러워 보이긴 해도 ‘한 번 시도해 볼까?’라는 생각을 할 찰나, (비록 양이 소는 아니지만) 광우병의 가장 핵심부분이 뇌와 척수라는 기사를 어디선가 읽었던 기억이 떠오르자 이내 평소와 같이 소세지와 양간을 선택하기로 했다. 언젠가 이란에 다시 올 기회가 있다면, ‘양 뇌 샌드위치’는 그 때 경험하기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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