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대륙횡단(09.7.28~09.11.07)/카자흐스탄(09.08.22~)

2009. 9. 8 (화)

SangJoon Lee 2009. 9. 28. 23:33

2009. 9. 8 ()

 

 

어제 투르크메니스탄 영사관에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통과비자(9월20일~24일/55$)를 받았다.

 

할 일이 없다. 뭘 할까? 책 한권 가져왔던 것이 생각났다. 득과 신촌을 걷다가 발견한 헌책방에 들렀을 때 득이 읽어보라며 권한 책. 출발 전 책 몇 권 가지고 갈까 생각했었는데 책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무겁다 보니 욕심내지 말고 한권만 가져가서 읽은 후에 다른 한국 여행객 만나면 서로의 책을 바꿔 읽기로 마음먹고 ‘원숭이가 된 유학생’이란 책을 여행 안내서와 함께 가지고 갔다.

 

아침부터 침대에 누워 책을 읽는다. 책장 너머로 슬쩍 보니 기숙사 방에 함께 있던 젊은 프랑스 녀석 둘이 가방을 싸서 귀국 준비를 한다. 무관심. 독서삼매경에 빠져있을 뿐이다. 재미난 대목을 읽느라 빈 방에서 혼자 미친놈마냥 낄낄대고 있으려니 끼이익 문이 열린다. 그리곤 예의 프랑스 여행자들이 떠난 자리에 일본에서 살고 있다는 미국인이 들어온다. ‘브라이언.’ 반갑다는 인사 몇 마디 후에 다시 엎어져서 킥킥대며 책을 읽는다. 시내 구경간다며 브라이언이 나간다.

 

책이 종반에 다다르자 다른 한 명이 문을 두드린다. 홍콩에서부터 로마까지 자전거 여행을 한다는 홍콩인 ‘푼’이다. 자신이 일정 거리를 달릴 때마다 홍콩의 유명 회사들이 유니세프에 얼마씩 기부하는 형식의 스폰싱이 이루어진다면서, 짐을 풀자마자 노트북을 펼쳐 열심히 여행기를 정리한다. 푼이 노트북을 켠 것을 보고선 그에게 다가가 블루투스(무선) 기능이 되는지 물어보았다. 스카이프의 위대함(!) 만끽하고자 엊그제 왁자지껄한 바라꼴까 노천시장을 구경갔을 때 거기에서 거금 1,200T를 주고 휴대전화용 블루투스 헤드셋을 샀건만 내 컴퓨터와 호환되지 않았다. 노트북이 오래된 기종이어서 무선신호를 잡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 푼의 노트북으로 신호를 잡아보려 했지만 역시나 잡히지가 않는다. 그래, 제대로  ‘눈탱이’ 맞은 것이다. 

 

날이 어둑해질 무렵 500쪽에 가까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참 오랜만에 책 한권 제대로 읽은 것 같다. 내용과 관계없이 (극한적 상황에서 인간과 동물의 차이란? 학벌만능에 갇힌 속물의 형태는? 그리고 죽음 앞에서 나는 당당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저자의 경험을 빌어 던지고 있는 책이다. 독후감은 생략!) 하루 종일 빈둥대지 않고 책 한권을 끝낼 수 있었다는 뿌듯함이 밀려온다.

......

 

며칠 전 신혼여행으로 1년짜리 세계여행을 막 시작한 커플이 옆방에 머물렀는데 이탈리아에서 온 엔리코와 호주에서 온 앨리시아 커플이 그들이다. 신혼여행을 1년씩이나 할 수 있을까 싶지만서도 아무튼 장기간 여행이므로 여행경비를 최대한 절약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였기에 여기 알마티에서 가장 저렴한 숙소인 이곳 제3도미토리를 찾은 것인데, 아무리 여행경비가 중요하다지만 화장실과 샤워실의  ‘참을 수 없는 지저분함’에 다음 날 두번째로 저렴한(하지만 조금 더 깨끗한) 숙소로 짐을 옮겼다. 마침 연락이 닿아  농담삼아 ‘5성급 호텔’로 옮긴 것을 축하한다고 하고선 저녁을 함께 할 것을 제안했다.  

......

 

막 자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쥰!’ 이라고 외치면서 문을 확 열어 제낀다. 깜짝 놀라 바라보는데 문 앞에 마크가 서 있는 게 아닌가! 바르나울에서 헤어졌던 마크와 알렉스가 키르기스탄 여행을 마치고 그곳에서 카자흐스탄으로 들어와 여기 제3도미토리에 머물게 된 것이었다. 더군다나 그들 역시 여기에 들어오면서 세릭의 도움을 받았고 문제있던 알렉스의 바이크가 지금 미샤의 정비소에 있다고 하니, 세상이 정말 좁긴 좁다.

 

옛 어른들이 말 조심, 행동 조심하라는 이유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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