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대륙횡단(09.7.28~09.11.07)/러시아(09.07.28~)

2009. 7. 29 (수)

SangJoon Lee 2009. 9. 7. 14:26

2009. 7. 29 (수)

 

 

흔히 ‘보따리장사’라고 불리는 국경무역상들이 자주 이용하는 3등 선실의 마룻바닥에 아무렇게나 몸을 포개 잠을 청한다. 그리고 평소에는 일찍 일어나지도 않건만, 흔들리는 배 안에서 TV 아침뉴스 소리에 눈을 뜬다. 분명히 여기는 ‘공해’ 일텐데 우리나라의 소식이 흘러 나온다. 그다지 맛있다고 하긴 어려운 아침식사 쿠폰을 5,000원 주고 산다. 어차피 상당기간 동안은 한국돈을 쓸 일이 없을 것 같아서 말이다.

 

 

 

어제는 보지 않았던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는 푸른 줄로만 알았는데, 검은색 바다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배의 오른쪽 창가로 육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항구가 자리하고 있는 만에 도착한 것이다. ‘잠시 후면 "섬"나"라"를 떠나 대륙에서의 여행이 시작되는구나’라는 생각에 설레임과 두려움이 이중 삼중으로 교차한다. 배가 러시아의 자루비노 항에 도착하자 곧바로 머리를 내밀어 항구의 모습을 보았다. 속초의 그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느낌-소박함-이랄까. 아무튼 ‘어머니 러시아’에 도착한 것이다.

 

 

1~2시간의 ‘러시안 타임’이 있었지만, 수속은 순조롭게 끝났다. 함께 온 다른 단체 여행객들이 빠르게 세관을 통관한 것을 보면 나는 특별한 경우라서 특유의 시간지체가 있었던 것 같다. 바이크를 싣고 와서 수속을 밟게 해주는 댓가로 동춘항운의 러시아 지사에 150$(현금)을 지급하였다. 덧붙여 세관수속과정에서 880RU의 바이크보험에 가입하였다. 러시아 지사에서근무하는 무뚝뚝한 아주머니-러시아인-가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한 것만 하면 내가 따로 뛰어다닐 일 없이 해결되었다. 드디어 러시아 세관에서 A4 절반만한 종이 두 장을 받았다. 서울에서 힘겹게 받은 까르네 서류에 도장이라도 찍어야하는 것이 아니냐는 심산으로 세관직원에게 까르네를 보여주며 여기에 고무도장을 찍어달라고 물어봤다. 돌아오는 대답? 러시아에서는 그냥 이 A4 두 장이면 된단다. 출발 전 상공회의소의 원 과장이 러시아에서는 까르네가 별로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는데, 그 말이 옳았다.

 

 

자루비노 항에서 우리나라로 향하는 영국 라이더 레온을 만났다. 이런 저런 정보와 함께 블라디보스톡에서 다른 영국인 라이더 토

니(www.sibirskyextreme.com)를 만날 것을 추천해 준다.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는 도중에 자갈길을 만났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자갈길을 마주친 적이 없으니 자갈길 라이딩은 처음이었다. 어떻게 대처해야하는 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결국에는 미끄러지고 말았다. 바이크가 어느 정도 망가졌는지 확인을 해 보니 오론쪽 사이드백 걸쇠가 부러졌다. 도로변의 식당 옆에 바이크를 세워두고 사이드백 걸쇠를 수리하다보니 시간이 지체되어 밤 늦게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하였다.

 

 

토니가 묵고 있다는 호텔 프리모리예의 길을 모르기에 자동차 운전자에게 묻자 100RU를 주면 가르쳐 주겠단다. 50RU에 하자고 합의를 보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호텔 앞에 바이크를 세워두고 숙박비 물어봤는데, 가지고 간 러시아 여행책자-며칠 후 불쏘시개가 될 운명의 소위 ‘2009년 최신판’-에 소개된 가격과 너무나 많이 차이가 났다. 염치불구하고 프론트 직원에게 주변의 저렴함 숙소를 물었더니 약 500m 떨어져 있는 작은 호텔을 가르쳐 주었다. 토니가 생각나서 투숙객 중에 영국인 토니가 있는지 물어본 후 방으로 전화를 부탁했는데 응답이 없었다. 그를 만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프리모리예를 나오는데 누군가 내 바이크를 연신 바라보고 있다. 다가가 보니 소위 ‘교복’이라 불리는 BMW 라이딩 자켓을 입고 있는 노신사가 다른 친구와 함께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토니였다. 반가웠다.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토니와의 만남이 이번 여행의 운명적 열쇠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토니와 테리를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를 나눈 후 소개받은 호텔 마략에서 체크인을 했다. 바이크에서 짐을 내리고 있는데 젊은 친구들이 호텔 문 앞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나를 신기한 듯 쳐다본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내일 군입대 예정인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왔기에 호텔에 묵고 있다고 했다. 이 친구들과 가볍게 맥주를 마신 후 근처 해변가를 걷는데,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불량스럽게 보이는 녀석들이 다가와서 몇 마디 수작을 건다. 러시아 말로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있나? 수작질을 피해 호텔에 돌아와 주머니를 살펴보는데, 지갑이 없다. 그 불량배들에게 지갑을 소매치기 당한 것이다. 참 능력도 좋다. 오른쪽 허벅지에 붙은 건빵주머니에 넣어둔 지갑을 낌새를 챌 새도 없이 가져가는 솜씨가 일품이다. 갑자기 호텔방의 천정이 노랗게 보이기 시작했다. 여태껏 지갑을 소매치기 당한 경험도 없거니와 신용카드, 현금카드, 그리고 가지고 온 $가 지갑 안에 고스란히 있었기에 빈털터리가 되고만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자자.”

 

 

 

(이상준, 오토바이, 세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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