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비자 만료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이르쿠츠크를 떠나기로 했다. 며칠 전 이메일로 재니에게 카드발송을 부탁했는데 오늘 연락을 해 보니 빨라도 일주일 가까이 걸린다고 한다. 열흘 안에 국경을 넘어야 하는데 그 때 즈음해서 해서 카드가 도착한다고 하니 난감했다. 미안했지만 재니에게 발송취소나 혹은 카드정지를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전화할 때마다 느끼지만 매번 재니에게 미안하다. 이르쿠츠크를 떠나기 전 엊그제 뚜까에게 쓴 편지를 보내기 위해 칼막스 거리에 있는 우체국을 찾아갔다.
중심가에서 다시 바이크 클럽으로 돌아오기 위해 콜택시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나는 영어, 그쪽은 러시아어. “니뽀니마유!(몰라)”라고만 해대는 콜택시 회사 직원과 말은 통하지 않고, 또 도로의 택시들은 왜이리들 바쁜지 택시잡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길 위에서 1시간 30분을 날려버렸다. 하늘의 도움이었을까. 칼막스 거리의 끝자락에서 서성이는데 바이크 클럽에서 포켓당구로 서로 알게 된 ‘바르한’이 차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나를 보고 경적을 울리기에 그의 차를 얻어 타고 클럽으로 돌아왔다. 세상, 참 넓다가도 좁다.
어제 스타스가 바이크 수리비로 400$를 요구하여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이기도 하거니와 장사꾼 같은 모습에 적잖이 서운하기도 했지만, ‘여행을 계속할 수 있게 된 게 어디인가’라는 생각에 그러려니 하고 부츠 아래 꽁꽁 숨겨 두었던 비상금 400$를 내어주었다.
......
스타스, 세르게이, 그리고 클럽 직원인 이라와 작별인사를 나눈 다음 바이크 클럽을 나서 ‘크라스노야르스크’를 향해 출발했다. 어? 라이딩 장갑이 어디갔지? 장갑이 없다. 장갑을 벗어둔 채 사고수습을 하다가 잃어버린 것 같다. 장갑을 끼지 않고 라이딩 하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에 폼은 나지 않지만 목장갑을 끼고 출발한다.
이르쿠츠크의 경계를 약 50km 지나는 지점에서부터 핸들링이 이상하다. 처음 출발할 때와 달리 자꾸 핸들이 흔들린다. 무슨 문제인가 싶어 바이크를 길옆에 세워놓고 살펴보니 앞부분 경적이 장착되는 주둥이가 깨져 있다. 세르게이가 인두로 붙여준 플라스틱이 다시 갈라져서 공기저항을 일으켜 핸들링이 이상했던 것이었다.
......
주둥이를 떼내어 가방에 매달고 다시 출발하려는데 바이크 한 대가 내 앞에 정차하더니 먼저 인사를 한다. 서로 통성명을 나누는데 캄차카에서 우크라이나까지 러시아 횡단을 하고 있는 러시아 라이더 ‘유라’였다. 노보시비르스크까지의 방향이 같기에 그와 함께 라이딩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야마하 750cc이고 내 이뚜까 9호는 상태가 온전치 못한 650cc였기에 약 1~200m의 거리차를 두고 그가 앞에 서고 내가 따라가는 방식을 취하기로 했다.
해가 저물어갔다. 야간운행이 어려운 상태였기에 길 옆 숲에서 캠핑을 하기로 했다. 캠핑을 하면서 방금 전 작은 카페에서 사온 맥주 두어 병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유라는 배로 중고자동차를 수입하는 일에 종사하기에 우리나라의 부산과 마산을 몇 차례 찾았던 적이 있었다며 “소주, 소주!” 하며 웃는다.
적당한 잡담과 취기, 서로의 텐트 안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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