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 5 (월)
새벽 6시. 가족들이 깰까봐 조심스럽게 이불을 걷어내고 일어났는데, 이미 가족들은 아침준비에 한창이다. 오히려 내가 깰까봐 조용조용히 다니고 있었다. 어젯밤 타브리즈의 호수공원을 구경할 때 달린 도로를 따라서 반대로 가면 국경이 나온다고 라술 아저씨께서 가르쳐 줬지만 내 머리용량으로는 재생해 내기가 어려웠다. 씨익 미소를 지으면서 가는 길을 다시 알려 달라고 부탁하자 두 딸의 등교, 자신의 출근을 겸해서 큰 도로를 타는 길까지 앞장설 테니 따라오라고 말해준다. 타브리즈를 벗어나는 국도 위, 멀어져가는 그들의 자동차를 바라보며 딸 아쉬라프, 소라야, 그리고 라술아저씨에게 크게 손을 흔들고선 이란-터키 국경도시인 ‘바자르간’을 향해 출발했다.
타브리즈가 국경에서부터 250km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다른 때와 달리 다소 여유를 갖고 8~90km 정도로 천천히 달렸다. 게다가 터키에 들어서면 처음으로 방문할 도시 ‘반(Van)’ 이 국경에서 130km 거리에 있다. 도합 370~80km. 이제 하루에 400km 이내의 거리는 흔한 말로 ‘껌’이 된 지 오래다. 여유로운 라이딩. 국경 앞 저 멀리에 하얀 눈으로 덮인 우뚝 솟아오른 산 하나가 보인다. 허어, 절경일세.
......
새벽 일찍 상각빵과 잼, 이란식 치즈로 가볍게 아침을 먹었기에 10시가 넘자 배꼽시계가 끊임없이 울려댄다. 이제 바자르간의 바로 앞 도시인 ‘마쿠’가 멀지 않았기에, 근방의 작은 마을의 가게에 들러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하고 있는데, 가게 앞에 세워져 있는 이뚜까 9호를 보고선 붉은 색의 바이크가 그 앞에 정차한다. 그리고는 유창한 영어로 내게 말을 걸어오는데...
“나는 네덜란드에서 20여 년 살다가 이곳 고향마을로 돌아온 ‘알리 레자’라고 한다, 너 이름이 뭐니? 바이크로 세계여행 중이니? 어디에서 왔니? 한국? 주몽? 하하. 너 독일어(네덜란드어) 할 줄 아니? 나는 네덜란드어는 유창한데 사실 영어는 약하거든. 나도 예전 유럽에 있을 때는 네덜란드, 독일, 오스트리아, 폴란드를 거쳐 모스크바까지 바이크 여행을 했었지. 며칠 전에는 BMW 1200GS를 타고 이곳을 지나는 호주인 라이더를 만났는데 여기가 세계여행의 길목인가보군. 너 오늘 중으로 국경을 넘을 예정이니?”
그 마지막 질문에 ‘응!’ 이라고 하자, 여기 가게 바로 옆에 있는 자신의 텃밭에서 가꾸는 토마토와 오이를 몇 개 가져가서 간식 겸 점심, 저녁으로 하라며 나와 함께 바이크에 올라 텃밭으로 향한다. 텃밭을 거닐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내가 가장 궁금해 하는 물음에 답해준다. “왜 이란으로 돌아왔냐고? 내가 네덜란드에 있을 때, 참 나도 많이 흥청망청 거렸지. 매일같이 술에 여자를 끼고 살았으니까. 정말로 매일.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다 보니 몸도 마음도 많이 망가지더구나. 그러던 어느 날, 어느 날 말야... 내가 사랑하던 내 여자친구가 교통사고를 당했어. 그리고... 세상을, 나를 그렇게 떠나버리더군. 그 일이 있고나서 그곳 네덜란드에서의 생활에 회의가 들었어. 내가 뭐하는 것인가 싶어 느린 삶을 살려고 모든 것이 ‘부족한’ 이곳 고향으로 돌아온 거야.”
아웅다웅 살면서도 다들 도시를 동경하는 세태 속에서 알리의 귀향은 내게 역설적이게도 앞으로 우리 사회가 경험할 지도 모르는 ‘새로운 방식의 삶’에 대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리고 한 입 베어 문 오이의 시원한 향.
......
비닐 봉지에 담긴 토마토와 오이를 받고서 다시금 출발하려는 데 알리가 내 바이크 이곳저곳을 보더니 ‘여기 나사가 없는데?’ 라며 메인프레임과 리어프레임을 연결해주는 나사구멍을 가리킨다. 어라, 원래 없는 것인가 싶어 다시 반대편도 보니 나사 구멍은 있는데 정작 끼워져 있어야 할 나사가 없다. 찬찬히 살펴보니 나사가 빠진 게 아니라 양쪽 모두 부러져 버린 것이었다. 순간 입 속에서 ‘쌍시옷’ 욕이 맴돌면서 가슴이 철렁해진다. 부러질 것이 따로 있지, 프레임을 연결하는 나사가 부러지다니. 알리가 발견치 않았더라면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채 런던을 향해 신나게 달리던 어느 길목에선가 바이크도 ‘이단분리’, 나도 ‘유체이탈’을 경험할 뻔 했으니 말이다. (첫 사진, 엔진 오른쪽 큰 나사 옆의 휑하니 뚫린 구멍)
여기 기계를 잘 고치는 미캐닉이 있으니까 그의 도움을 받자며 알리가 다시 자신의 마을로 돌아가잔다. 그게 나을 것 같다. 조금 멋있는 정비소를 기대했지만 여기는 이란이 아닌가, 그래 전형적인 시골마을 ‘철공소’의 모습이다. 어찌 되었건 끊어진 나사의 끝부분을 빼낸 다음 새 나사를 끼워 넣는 일이 급선무. 다행히 알리가 철물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구멍에 맞는 나사를 구해다 주었다. 뒷 타이어 제거, 몇 번의 용접 끝에 알리와 그의 친구인 철공소 주인의 도움으로 나사를 새것으로 끼워 넣을 수 있었다.
알리가 얼마냐고 철공소 주인에게 묻자, 이내 시골식 흥정이 이루어진다. “뭘 그런 걸 다 내려고 해! 그냥 가게.” “아니야, 얼마냐니까?” “그냥 가도 돼!”... 십 여분간 실랑이를 하더니 알리가 주머니에서 5만 리얄(우리돈 6천원)을 꺼내더니 친구의 주머니에 우겨 넣는다. “에이, 뭘 이런 걸 다...” 못이기는 척 하며 받아 넣는 주인. 그래, 여기네도 우리네도 다 꼭같은 사람 사는 곳이다. (사진 속에서 철공소 주인은 누굴까요?)
바이크 위에 짐을 다 꾸리고, 기념사진 한 장 찰칵. 그리고 출발코자 시계를 보니 어느 새 두시가 지나 세시를 향해간다. 어찌한담.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알리가 내게 물어온다. “준, 국경을 급하게 넘어야 할 게 아니라면 오늘 우리집에서 하룻밤 자고, 내일 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터키 국경을 넘어 ‘반’까지 가는 길이 어떤지도 또 길 옆에 텐트치고 잘 수 있을지도 모르기에 적잖이 걱정됐는데, 알리가 독심술로 내 마음을 읽을 것일까. 예의상 ‘Can I...?’라고 반문하자 당연하다면서 곧바로 아내에게 오늘 밤 내가 그의 집에서 머물 것이라고 전화를 건다.
알리의 시골집에 들어섰다. 그리고는 곧바로 바이크 가방에서 체인 스프레이를 꺼내어 체인 구석구석에 뿌려 주었다. 동시에 가방에 있는 짐들을 하나씩 둘씩 살펴본다. 여기는 이란의 끝마을, 내일 터키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잘 갖춰진’ 곳에서의 여행이 시작된다. 다시금 비워내기를 해야할 때다. “알리, 내일부터 터키에 들어가면 이것들은 필요 없을 것 같은데, 혹시 괜찮다면 여기에 두고 가도 될까?” “준, 네게 필요없는 것이라면 뭐든지 여기에 놓고 가도 돼. 시골은 부족한 게 많거든.” 몇 천, 몇 만원씩 주고 구입한 (하지만 여태껏 사용한 적 없는) 공구며 문구용품, 심지어 비상견인용으로 속초시내에서 샀던 10m짜리 빨랫줄까지.
이제 아까의 바이크 수리비를 계산할 차례이다. 지갑을 열어보니 5만리얄 짜리 지폐가 넉 장 들어있다. 계산을 해 본다. ‘터키는 휘발유값이 비싸다고 하니까 내일 국경을 넘기 전에 가득 채우고 들어가려면 5만리얄로 충분하겠지.’ 그래, 나머지 석장은 사실 내일 국경을 넘으면 “이상준 이란 다녀오다” 를 알리는 ‘증명서’ 내지 ‘기념품’으로 전락할테니 그럴바엔 알리에게 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수리비라며, 그리고 앞으로 쓸 기회가 없을 거라며 그 석장을 건네주자 괜찮겠냐며 내게 묻는다. 나 역시 알리가 했듯이, 그의 주머니에 우겨넣기 신공을 펼치며 ‘딜’을 마쳤다. 알리 옆에서 그의 네살박이 아들 ‘아레스’ 녀석,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혀 짧은 목소리로 ‘알리! 알리!’ 외쳐댄다.
저녁을 먹으니 이내 해가 어둑해졌다. 중고자동차 한 대를 구입해서 일감이 없는 올 겨울에 이웃도시 마쿠에서 택시업을 할 예정이라면서 마침 오늘 저녁 중고차 한 대를 보러 갈 텐데 같이 가지 않을 거냐고 알리가 묻는다. 당연히 O.K. 알리가 보려는 중고차는 신기하게도 버튼 하나로 휘발유와 가스를 번갈아 가며 연료로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차였다. 여기 이란에서는 휘발유 값도 싸지만 자동차용 가스값은 휘발유 값의 절반의 절반 밖에 하지 않으니 오래된 중고차여도 가스차는 적잖이 값이 나간다. 하이브리드 승용차를 구입해서 운행은 가스로, 그리고 주유카드로 할당받은 휘발유는 ‘어둠의 경로’로 넘겨서 일정수입을 얻는 것이 알리의 생각이었다. 내가 봐도 그게 나을 것 같다.
보러 간 승용차가 비싼 가격을 불러서 승차만 한 채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내일 더 나은 조건의 다른 승용차를 보기로 했다.
......
이런 따듯한 만남. 그리고 하마터면 ‘죽을 뻔’한 운명을 피하도록 나타나 준 알리레자.
터키까지 바이크를 타고 가기로 한 것은 잘 한 결정인 듯 싶다.
그래, ‘오토바이 세계여행’은 역시 오토바이로 하는 것인가 보다.
다시 한 번, 아버지의 ‘운명론’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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