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8. 2 (일)
2009. 8. 2 (일)
호텔에서 계란 후라이인지 반숙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아침을 먹고 로만의 정비소로 향하였다. 정비소에서 토니의 전화기를 빌려 재니에게 안부전화를 걸었다. 여기 시간이 오전 11시 50분 이었으니 서울은 아침 9시 50분, 즐겁게 일요일 오전 휴식을 보낼 시간이었을텐데 나만 들뜬 기분에 전화를 걸었던 것인 듯. 가끔씩 시차를 잊게 된다. 그리고 한 나라 안에서 11시간의 시간대를 갖는 러시아의 크기에 놀랄 때도 있다.
테리가 나의 짐을 보더니 자신의 짐을 보여주면서 너무 많이 가지고 다니는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짐의 무게를 덜어낼 것을 조언해 주었다. 그의 조언을 따라서 정비소에서 불필요한 짐 덜어내기를 시작하였다. 무엇보다도 부피가 많이 나가는 라면, 쌀, 부탄가스통, 그리고 여행 출발 전날 맥슬러에서 구입한 라이딩 진팬츠 등을 놓고 가기로 했다. 부피는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무게는 여전히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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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깨진 사이드백 조각을 자신의 작업장으로 가져간 슬라바는, 알루미늄판과 리벳을 이용해서 조각들을 붙여나가기 시작했다. 이내 원래의 용도대로 사용이 가능하게 고쳐졌다.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면서까지 이방인의 바이크 백을 고쳐주는 그의 정성에 감동하면서 연신 “루스끼 파워!”를 외쳐댔다. 그에게 감사의 표시로 가져갔던 청색 라이딩 자켓을 선물로 주었다. 그의 심볼컬러가 노란색이라는 점이 아쉬웠지만, 감사의 표시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주었다. 연신 사양하기에, ‘그러면 푸른색을 좋아하는 다른 친구에게라도 주라’고 말하고서는 기어코 건네주었다.
앞으로 클러치 레버만 고치면 다시금 달리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정비가 완료된다. 다만 오늘은 일요일이라서 용접을 맡길 수 없었기에 클러치 레버는 내일로 미루었다. 다른 시비리스키익스트림 멤버들의 바이크도 거의 정비를 마쳤다. 월터도 슬라바가 어렵게 구해준 이리듐 플러그를 자신의 바이크에 장착하는 데 성공했다. 다만 토니의 바이크는 프론트 림과 리어 서스팬션, 스윙암 액슬에 문제가 있어서 완벽한 정비는 다소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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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소 직원 유라가 생일이라고 하여 정비소 한 켠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보드카와 샤슬릭 파티를 열었다. 무엇을 선물로 줄까 생각하다가 가져간 양념고추장을 샤슬릭 소스로 내놓았다. 샤슬릭에 양념고추장을 찍어 먹어본 이들 모두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하라쇼!” 보드카의 취기가 이내 오르자 러시아인 특유의 음악 즐기기가 나온다. 잠시 안 보이던 유라가 양념고추장 선물이 고맙다면서 러시아 군용 비상식량을 선물로 준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말이 바로 이때를 일컬어 하는 말 같다. 어찌되었건 가장 큰 문제였던 왼쪽 사이드백이 해결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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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소매치기라는 것을 당해봤으니 러시아에 대한 첫인상이 좋을 리가 만무하다. 그런데 러시아 사람들에 대한 좋지 않았던 기억이 한 사람 두 사람씩 알게 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변하고 있다. 얼굴에서 읽게 되는 러시아인의 첫인상은 많이 무뚝뚝하고 표정은 딱딱하지만 그 딱딱함을 깨고 나면 너무나도 부드러운 그들의 속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