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 8 (목)
2009. 10. 8 (목)
새벽 내내 바람이 심하게 텐트를 흔들어 댔다. 5시 50분. 아직 별빛이 보인다. 주유소 화장실의 세면대에서 찬물로 세수를 하니 정신이 번쩍 돌아온다. 새벽이어서 일까, 이제 10월이어서 일까, 라이딩 하기에는 꽤나 쌀쌀하다. 마쿠의 알리 가족 집을 떠나기 전 라이딩 자켓 안에 바람막이 역할을 할 방수내피를 부착했지만 여전히 춥다. ‘케이세리’를 향해 달리는 데 몸이 덜덜 떨려온다. 10월 중순으로 접어든 터키 중부지방. 러시아~이란을 거치면서 지금껏 알지 못했는데, 어느 새 단풍이 물들어 있다. 7월에 시작한 이 여행, 이제 10월이라는 사실을 자연이 알려주고 있었다.
아무튼 춥다. 견디고 달릴까 했지만, 무리! 어쩔 수 없이 오랜만에 히팅그립의 스위치를 켰다. 이내 따듯함이 손바닥을 타고 온몸으로 전달된다. 하지만 히팅그립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빨리 해가 떠오르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케이세리를 향하는 길 한복판에서 아주 오랜만에 비를 흠뻑 맞았다. 입에서 ‘망할 놈의 비’라며 쌍시옷이 절로 나온다. 아마 아스타나에서 알마티로 향하던 첫날 우중 라이딩을 한 이후 처음인 듯 싶다. 참으로 오랜만에 경험한 우중라이딩. 다만 그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비가 내리지 않을 때도 꽤나 쌀쌀한 날씨라는 것.
케이세리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오후 두 시. 100~150km 정도 더 달릴 수 있는 시간이다. 어차피 카파도키아 지방에 머물 예정이었으니 여기서 하루 쉬는 것보다 차라리 150km 정도 떨어진 카파도키아 지방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런데 카파도키아 지역의 어디에 가서 쉴 것인가를 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카파도키아 지방의 마을 하나 하나가 모두 여행 명소이다보니 딱히 여기다라고 할 만한 곳을 모르겠다. 문득, 며칠 전 가져간 론리플래닛 유럽편에 압축되어 소개되어 있는 카파도키아 지방에 관한 내용 중 동굴마을 ‘괴레메’가 생각 났기에 그곳으로 향하기로 정했다.
저 멀리에 요정이 살 것만 같은, 흰색의 기암괴석들이 뾰족뾰족 서 있다. 그리고 그 바위들마다 뚫려있는 구멍들. 그래, 동굴을 뚫어 혈거인들이 살았고 지금도 살아오고 앞으로도 살아갈 괴레메에 온 것이다. 신기한 마을 괴레메에 온 게 정말 잘 한 선택인 듯 싶은 첫인상이다. 여행책자에 안내된 ‘트레블러스 케이브 호텔’을 찾아 짐을 풀었다. 호텔의 매니저가 일본여성이라서일까, 일본인 관광객이 꽤나 많다. 짐을 풀자마자 한 마디, 인터넷 되나요? 된단다. 터키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득과 네잇온으로 연락을 취하면서 이런 저런 준비를 점검했다. 문명의 이기.
저녁을 먹고, ‘에페스’ 맥주 한 병을 옆에 낀 채 다시금 마당에 앉아 인터넷 검색과 일기정리를 했다. 저 아래서 일본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여성 둘이 계단을 올라선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널부러저 앉은 채 인터넷을 하고 있는 나를 보더니 한 마디 던진다. “곰방와!” 씨익 웃어주며 ‘Hi, guys!’ 라고 되받아친 로켓펀치 한 방! 의외의 영어 인사를 듣자 당혹해하는 그들의 표정이 우습다. 그리고 덜덜 떨며 건네는 인사. “He... hello.”
‘주체적으로’ 자란 머리에 콧수염. 내 모습을 일본사람으로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무튼,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렇고 또 이 일본 여행객들도 그렇고 ‘피부색’에 대한 편견. 극복해야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