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gJoon Lee 2009. 10. 24. 04:55

2009. 10. 4 (일)

 

 

아침을 먹고 일찍부터 출발준비를 서둘렀다. 오늘의 목적지는 이란-터키 국경에서 250km 떨어진 북부도시 ‘타브리즈’.

 

어젯밤에 느림보 인터넷을 밤새 켜놓은 채 다운로드 받은 1996~2001 추억의 명곡들에 취했기 때문이었을까? 오늘따라 무슨 신들린 사람마냥 평균 130km의 고속주행을 감행했다. 게다가 다음 주유 때까지 멈추지도 않은 채 쉬지 않고 달린다.

 

주유를 마치면 언제나 거리표시를 0km 로 해 놓는다. 이란의 휘발유 질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인지 리터당 평균 25km를 기록한다. 전체 16리터의 연료통에 4리터가 남으면, 즉 300km를 달리면 주유 경고등이 켜진다. 210km를 달리자 주유소가 하나 보였다. 곧 다음 주유소가 나오려니 하고 달리는 데 주유소는 보이지 않은 채 타코메터는 300km를 나타낸다. 딱 300km를 기록하는 순간 노란 주유 경고등이 켜진다. 식은 땀이 주욱 흘러 내린다. 러시아에서 몇 차례 경험한 이래 노란색의 주유 경고등을 보지 못했기에 꽤나 짜릿짜릿한 아드레날린의 흥분신호가 온몸으로 전달된다.

 

rpm을 3,000정도로 하면서 10km를 천천히 나아가니 ‘패트병’에 휘발유를 넣어두고 파는 간이기름집(오히려 노점상에 가까운)을 발견했다. 휘발유를 파는 사람에게 주유소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물었더니 한 50km 떨어져 있단다. 남아있는 기름은 4리터. 리터당 25km를 달릴 수 있으니 여기서 넣지 않고도 가면 되겠구나 하는 마음에 안녕이라고 말할까 싶었는데, 혹시 모르니 그냥 5리터만 사자는 생각으로 손가락으로 다섯을 가리키고 ‘리테르’를 외쳤다. 이내 창고로 들어가더니 5리터짜리 엔진오일통에 담긴 휘발유를 꺼내온다. 아무리 봐도 4리터로밖에 안 보이는 기름을 넣은 다음 리터당 500투만을 주고 다시 출발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끝없이 펼쳐진 고원과 그 사이에 시원하게 뚫려있는 도로뿐, 50km는 고사하고 100km가 다 되도록 주유소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100km가 지나는 순간 이내 주유 경고등이 다시 뜬다. ‘100÷25’. 역시나 아까의 노점상에서 산 기름은 5리터가 아니라 4리터였던 듯 싶다.

 

다행히도 주유 경고등이 뜰 무렵, 도로 표지판에 타브리즈 바로 앞 도시가 5km미터 남았다고 적혀있었다. 도시 안에는 주유소가 한 두 개씩 있는 법. 타브리즈에 들어가기 전 그곳에 들러 주유를 하기로 했다. 마침 도시 입구에 주유소가 있기에 마음 편히 주유를 마칠 수 있었다.

......

 

타브리즈. 이란 북부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도시=미로. 이곳의 입구에서 얼마나 서성이고 있었을까. 어느 육교 아래서 론리플래닛의 지도를 보며 연신 헤매고 있는 찰라, 챠도르를 둘러싼 젊은 여성이 내게 다가온다. “Excuse me, can I help you?” 그리고 그 여성과 함께 다가오는 아저씨.

 

“네, 저는 지금 이 지도의 여기 숙소를 찾고 있어요.” “혹시 가고자 하는 숙소에 예약을 하신 것인가요?” “아니요, 도착하는 대로 체크인을 할 예정입니다.” “체크인 후에 특별히 일정이 있나요?” “아니요.” “그렇다면 우리 집에서 저녁을 함께 하는 것 어떤가요?” 우리집? 알고보니 여성 옆(아쉬라프)에 서 있던 아저씨는 소방관인 그녀의 아버지(라술)였던 것이었다. 갑자기 론리플래닛의 어느 문구가 퍼뜩 떠올랐다. 이란사람(가족)들이 초대를 할 때, 사양치 말라는. “네, 좋습니다.” 막 출발을 하려는 순간, “괜찮다면 숙소가 아니라 우리집에서 하룻밤 자고 가시는 게 어떤가요?” 너무나도 갑작스런 호의에 당황스럽지만, 거절하면 오히려 예가 아닐 것 같다.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시 엔진 시동을 켜려는데, 챠도르를 걸친 다른 여성 한 명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알고 보니 둘째 딸 소라야 였다.

 

타브리즈 대학 앞, ‘헤매고 있던 덕분에’ 이란에서의 가장 좋았던 경험인 ‘말레키 가족’을 만나게 된 것이다. 아빠 라술 말레키, 엄마 로자이에 주디, 큰 딸 아쉬라프, 작은 딸 소라야, 아들 베흐자드 가족의 따듯한 초대로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운 ‘평범한’ 이란의 가정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말레키 가족의 집. 푸짐한 저녁식사가 마련되었다. 그리고 다양한 대화. 여기서도 빠짐없는 것은 ‘이란사람들에 대한 한국사람들의 시선’이었다. 곤란한 질문이다. 내가 한국사람을 대표할 수 있지 않기에, 항상 얼버무려 대답하지만 매번 ‘제대로 답한 것일까?’ 하는 물음이 내 스스로에게 다시 돌아온다. 따듯한 초대와 저녁식사에 대해 무엇을 선물할까 생각하다가 노트북에 저장된 mp3음악 몇 곡과 우리 가족사진을 전송해 주었다.

 

저녁식사 후 차 한잔과 함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아쉬라프는 한국의 대학생활비가 궁금한가보다. 방값으로 대략 한 달에 4~500$ 정도(서울) 나아간다, 그리고 요즈음엔 한 학기 등록금으로 약 3,000$ 정도가 든다고 내가 말해 주자 물가가 너무 비싸다며 놀란다.

 

반면 나는 최근의 이란의 정치적 문제, 무사비와 아마디네자드의 선거에 대한 내용을 들었다. 내가 무사비와 아마디네자드 이야기를 꺼내자 라술 아저씨는 그 얘기를 어디서 들었냐면서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올 봄, 일간신문의 국제면에 매일같이 나오는 이야기였기에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고 얘기하자 지금껏 듣지 못했던 전혀 다른 이야기(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준다. 처음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선거문제가 단순한 정치문제가 아니라 서부지역의 터키계 이란인(무사비), 남부지역의 아랍계 이란인(아마디네자드) 사이의 갈등이라는, 민족문제가 섞인 꽤나 복잡한 문제라며 대체적으로 이야기하기를 꺼려하는 분위기였다.

 

타브리즈에 얼마나 머물 예정이냐고 묻기에 내일 국경을 향해 떠날 거라고 말하자 라술 아저씨는 사뭇 아쉬워 하면서 가급적 내게 타브리즈의 많은 곳을 구경시켜주고 싶어하는 모양이다. 밤이 늦었음에도 아저씨 차에 나와 가족 모두가 타고 타브리즈의 명소인 공원과 호수를 구경하러 나갔다.

 

...내일 아침 8시에 아쉬라프의 프레젠테이션이 있다고 하는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