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 3 (토)
2009. 10. 3 (토)
어제, 이란(테헤란)-터키(이스탄불) 간 열차 ‘오리엔트 아시야 익스프레스’편을 알아보기 위해 테헤란 역에 갔는데, 아뿔사! 일주일에 한 편 있고 매주 목요일 저녁에 출발한다는 것이 아닌가. 갈등의 시작이었다. 일주일을 기다릴 것인가, 바이크를 타고 터키로 갈 것인가.
숙소로 돌아와 이메일 체크를 해 봤다. 야즈드, 이스파한에 있을 때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에서 만난 ‘세마’에게 오리엔트 익스프레스에 관해서 물었는데, 이미 세마가 답메일에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는 매주 목요일에 한 편 있다고 적어놓은 것이었다. 내가 테헤란으로 달려 오는 도중에 세마의 답메일을 놓친 것이었다. 아버지께서 자주 하시는 농담처럼 ‘버스 떠난 뒤 기다려달라고 손 흔드는’ 꼴이 되어 버렸다.
세마에게 내가 열차를 놓쳤다고 메일을 보내자 이내 답이 온다. “그러기에 뭐랬니, 목요일에 열차 떠난다고 하지 않았니. 그렇지만 낙심마. 차라리 바이크를 타고 국경을 건너봐. 더 멋진 동부, 중부 아나톨리아가 너를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일주일 기다렸다가 ‘아시야 익스프레스’를 타고 이스탄불에 갈 것인가, 아니면 바이크를 타고 국경을 건너 아나톨리아를 볼 것인가. 여유로운 바이크 여행자의 행복고문이 시작된다.
그리고 저녁, 수홍에게서 메일이 왔다. 녀석, 송편사진을 첨부했다. 내일이 추석이니 송편사진으로 송편먹은 것 대신하고 추석 잘 보내란다. 추석이 10월에 있는 줄은 알았지만 언제인지 몰랐는데 그 덕분에 추석을 알게 되었다. 고마운 친구. 보름달에 소원 빌어야 겠다.
......
밤내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바이크를 타고 국경을 넘기로 했다. 역시 모터사이클 여행은 모터사이클로 하는 것이 제격인 듯 싶다. 무슨 일이 펼쳐질지 모르지만, 그 불확실성 자체가 모터사이클 여행의 참맛이니 그것을 잃을 수는 없지.
옆방에 묵고 있는 아일랜드 청년 둘로부터 터키편 론리플래닛 pdf 파일을 얻을 수 있었다. 이번에도 지난 알마티에서처럼 여행안내서 제본을 만들기로 했다. 론리플래닛이 완전한 안내서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여행계획과 생각의 틀을 갖을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유용하다고 믿는다. 그러기에 없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
그리고 날씨가 쌀쌀해졌기에 지금가지 두 달 내내 질질 끌고 다닌 샌들 외에도 운동화 한 켤레 사기로 했다. 18,000투만에 컨버스 운동화 한 켤레를 샀다. 그런데, 젠장 270mm를 살 것을 280mm로 샀더니 덜거덕 덜거덕. 꽤 많이 크다.
... 테헤란의 마지막 밤, (엄격한 이슬람 국가답게) 알콜 0%의 ‘델스터 맥주’로 아쉬움을 달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