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gJoon Lee 2009. 10. 18. 20:27

To. 득에게

 

 

누군가가 세상의 절반이라고 말했다던 이스파한에서 편지 보낸다. 도시 중심에 자리잡은 커다란 모스크와 광장, 그리고 남쪽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강. 마샤드와 야즈드에서 길을 걸을 때마다 보여줬던 이란 사람들의 호기심 섞인 눈빛과 미소를 여기서도 헬로인사와 함께 접하게 된다. 오후 두 시. 따갑게 내리쬐는 태양빛만 아니라면 그 어느 곳보다도 걷고 싶은 여행지가 아닐까.

 

350여 년 전의 유럽시인이 말한 세상의 절반이 그때나 지금이나 사실인지 모르겠다. 백 년 전에 누군가 우리나라 하늘 위를 비행기타고 지나가면서 내려다 보고서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했다는 것이나 같은 맥락이랄까. 하지만 그런 냉소적인 태도를 버리고 그냥 오늘의 이스파한을 느끼고 싶어. 그래서 정처 없이 이 길 저 길을 걸어다니지. 다섯 나라를 여행해 왔지만 장담컨대 여기 이란 사람들이 제일 상냥하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까지는.

 

 

내 스스로에게 슬픈 현실이지만 솔직히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어.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이곳 이스파한에 대한 무지가 나의 눈과 귀마저 꽉 막히게 만들어. 이스파한 뿐만 아닌 모든 여행지에서 마찬가지였지만. 유명 건축물에 가도 감흥을 느끼지 못하니 부끄러울 뿐이다. 고등학생 시절 경주에 수학여행을 갔을 때는 몰랐던 것을 나중에 유홍준씨의 책을 읽은 후에야 내가 왜 그것을 좀 더 유심히 보지 않았던 것일까라고 후회했던 그 기분이 반복재생 되곤 하니 말이야.

 

짧게는 두 세달, 길게는 사 오 년씩 여행을 하거나 하려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돼. 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여행의 길고 짧음을 떠나서 충분한 여행준비를 하고 왔다는 것에 놀라곤 하지. 그리고 나의 현실을 비교해 보는데, 7월 중순, 20 여일 정도 준비 아닌 준비를 하고서 무작정떠나고 보자는 식이었으니 다소 무모한 것이 아니었나 싶을 때도 있다.

 

물론 이런 무지가 여행의 불편한 장애물이 될 수 있을지언정 런던까지 달려가는 것을 막지는 못할거야. 알고, 보고, 느끼고, 들려주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 몫을 넘겨주고 나는 마음 한 곳에 이번 여행의 감동을 담으면 되는 것이니까. 물론 안타깝게도 나의 휘발성 기억들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없게 될지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이것들이 축적되어 큰 변화의 밑거름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네.

 

 

아무튼, 네가 꼭 가보라던 이스파한에서 짧게나마 메일 남긴다. 내일 10 1, 테헤란으로 들어갈 예정이네. 거기서 며칠 지내면서 trance asia express이던가 trance oriental express이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무튼 테헤란(이란)-이스탄불/앙카라(터키) 간 열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 터키로 들어가는 방법을 알아볼 생각이야. 그게 불가능하다면 원래대로 바이크를 타고 국경을 넘는 수밖에.

 

들리는 바로는 터키 물가가 유럽물가 못지 않게 비싸다고 하더군. 여행을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터키는 휘발유 가격도 유럽보다 비싸다던데, 1리터에 2유로 정도?우리 나라 휘발유 값은 터키에 비하면 양반인 셈이지. 참고로 여기 이란에서 자국민은 1리터에 단돈 120원에, 주유카드가 없는 외국인은 1리터에 우리 돈 500원에 기름을 채울 수가 있어. 자국민과 외국인 사이에 네 배 정도 차이가 나지만 여전히 싼 편이지.

 

 

테헤란에 들어가서 열차편을 알아본 후 연락하마. 이제 시험 결과 발표가 두 주 앞으로 다가왔는데 결과에 상관없이 유럽여행 준비하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그런데,자네 여권은 준비된 건가? 그것 없으면 해외여행도 그냥 종이 위의 상상에 그칠 뿐일세! 하하.

 

9월의 마지막 날 세상의 절반에서 보내는 편지, 이만 줄이겠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