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gJoon Lee 2009. 10. 13. 05:38

2009. 9. 23 (수)

 

 

아쉬가밧에서 10km 남쪽에 떨어진 국경으로 향했다. 엊그제 밤에 도착해서 숙소를 찾을 때는 몰랐는데 아침에 바이크를 타고 도로 위를 달려보니 도로가 너무 매끄러워서 빙판 위를 달리는 느낌이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브레이크를 잡았는데 하마터면 넘어질 뻔 했다. 전 대통령 각하께서 평평한 도로를 좋아한다기에 이렇게 만든 것일까. 이승만 대통령이 방귀를 뀌자 한 보좌관이 ‘각하, 속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했다던 아부가 문득 떠올랐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2007년부터 이란에서 주유를 하기 위해선 ‘주유카드’가 필요하다는 글을 론리플래닛에서 읽었기에 이란에 들어가기 전 미리 주유를 하기로 했다. 주유카드를 구입하지 않은 나로서는 주유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테니까 말이다. 이런 문제는 도시에 도착한 후에 사정을 살펴보는 게 최선이다. 국경에서 다음 목적지인 ‘마샤드’까지는 240km 정도 떨어져 있으니 기름을 가득 채우면 재급유 없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이다. 주유소에서 약 5L 정도 채워넣고 값을 지불하려니 엄연히 주유기에 3.6M이 표시되어 있는데도 주유소 직원은 5M을 달란다. 웃으면서 “노! 노!”라고 하자 4M 달란다. 뻔히 보이는 0.4M은? 이제 내가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여행을 마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그의 태도가 우습기도 하고, 삶이라는 게 가끔은 속아주는 것이기도 하겠거니 하는 생각에 ‘너 참 재미있는 녀석이다’는 표정을 지어주며 4M을 건네주었다.

 

 

국경 검문소가 나왔다. 이제 드디어 이란이구나 싶었는데 웬걸. 병풍처럼 높게 둘러싸인 기암괴석과, 국민들이 함부로 외국(이란)으로 도망가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에서 만들었는지 길게 늘어선 전기철조망으로 감아진 구불구불한 무인지대를 무려 25km를 더 달리고 나서야 투르크메니스탄-이란 국경이 보였다. 한 15분 걸렸을까, 들어올 때와 달리 투르크메니스탄 세관은 의외로 쉽게 통과했다. 그런데 이란세관이 문제 됐다. 내가 가지고 간 ‘A.T.A. CARNET’는 처음 본다면서 담당자가 테헤란에 있는 관계당국 이곳 저곳에 전화를 걸어본다. 결국 3시간이 지나서야 나의 카르네를 여기서는 사용할 수 없으니(ATA 카르네용 도장이 없다나? 별 희안한 변명도 다 듣는다) 이뚜까 9호를 위한 임시통행증을 만들어 주겠단다. 그러면서 통행증 발급 명목으로 85$을 지불해야 한다고 말해준다. 서울에서 카르네 만드는 데만 30만원이 넘게 들었는데 통행가능 국가인 여기 이란에서 10만원 가까이 더 지불해야 한다는 말에 적잖이 속이 쓰려왔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상품통관을 주 목적으로 하는 ‘ATA 카르네’와 차량 임시통행을 위한 ‘카르네 드 패시지’의 기능과 내용이 서로 다르니 낼 수밖에.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주몽!’, ‘소서노!’를 외치면서 이곳 세관직원들이 무척이나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소서노 사진 있냐’, ‘소서노하고 잘 아는 사이이냐’ 등등 배우 ‘한혜진’에 대한 관심이 왜 이리 많은지. 섣부른 판단일지도 모르겠지만, ‘조용한 아침의 나라’ 한국을 알리는데 드라마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연예인들 역시 애국자로 간주해도 좋을 듯 싶다. 아무튼 주몽을 열심히 보고, 간단한 호의의 표시로서 줄 한혜진과 송일국의 사진 몇 장 가지고 올 걸 그랬다.

......

 

드디어 이란 땅이다. 왠지 이란에 와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신비로움이 감돈다. 국경에서 가장 근접한 도시인 ‘쿠찬’까지 가는 길 60km는 최고의 라이딩 코스였다. 길 양 옆으로 여기저기서 캠핑을 하는 가족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해가 조금씩 저물어 가기에 쿠찬을 지나서부터 마샤드를 향해 주요국도에 올라섰다. 지방도에서와 달리 주요국도에서 차들이 오히려 규정속도를 더 잘 지키며 달린다. 그러다보니 조금은 답답하다. 국도 위를 달리는 이륜차 운전자들이 자주 눈에 띈다. 이란 국민들은 대배기량 모터사이클을 타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보니 국도의 2차선 도로 위를 달리는 모터사이클들은 하나같이 소형이다. 신기한 것은 대부분의 라이더들이 헬멧은커녕 방풍경조차 안 쓰고 시속 7~80km로 질주한다. 눈이 따가울 텐데, 놀라울 따름이다. 이곳 국도 상에서도 생소한 모습의 나는 어김없이 운전자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자석이었다. 100km로 달리면서 백미러로 나를 힐끗 쳐다보는 운전자, 뒷자석에 앉아 나를 웃으며 바라보는 여성들, 창문을 내려 “헤이!”하며 친근감을 표현해 주는 사람 등등. 이러다가 정말 ‘왕자병’에 걸리는 게 아닐까 싶다.

 

마샤드에 초입에 진입하자 운전자들이 갑자기 난폭운전자로 돌변한다. 계속 울려대는 경적소리, 켰다껐다를 반복하는 상향등, 무시되는 차선. 업친데 덮친 격으로 이미 어둠이 사방에 짙게 깔리기 시작했다. 그나마 가로등이 도로를 비춰주니 다행이었으나 인구 300만의 대도시에서 해가 떨어진 상태로 허섭한 론리플래닛의 지도 한 장 가지고 숙소 찾아가기란... 오늘도 행운을 기대할 수밖에. 마샤드 입구에 이뚜까 9호를 세워놓고 길을 횡단하려는 두 청년에게 다가가 ‘이맘 호메이니’ 전철역을 물어봤다. 직진하라고만 하며 바삐 자신들의 길을 건넌다. 고맙소이다. 한 5km를 더 달린 후 이번에는 멈춰 있는 택시 아저씨께 길을 물었다. 친절하게 약도까지 그려가면서 설명해 주는데 (죄송하지만) 이해불가. 웃으며 “탁샤꼬르 메르씨!(정말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다음 다시 출발하려는데, 푸른색의 소형 트럭 한 대가 다가오더니 ‘이맘 호메이니 역’을 찾지 않냐고 묻는다. 어! 어떻게 알고 있지? 찬찬히 그들을 보니 아까 마샤드 입구에서 내가 길을 물어봤던 두 청년들이다. 걱정이 되었는지 나를 찾아 여기까지 와 준 것이었다. 그들의 도움으로 미로같은 교통지옥 마샤드의 어둠 속에서 무사히 숙소 ‘Vali's Homestay’를 찾을 수 있었다.

......

 

주인인 발리 아저씨, 네덜란드-독일인 커플, 그리고 네덜란드인 프랭크와 함께 차를 곁들인 저녁을 먹으면서 발리 아저씨의 재담에 빠져들었다. 이란이 아직 팔레비 왕조였던 젊은 시절, 영국과 독일에서 몇 년씩 보냈던 발리 아저씨는 기차, 버스, 히치하이킹으로 이란에서 유럽까지 여행을 다녀왔던 경험을 들려 주었다. 그래서인지 배낭여행자들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면서 그 경험이 지금 투어가이드(자원봉사)로 활동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그러면서도 ‘카펫상인’으로서의 본업을 잊지 않고 대화 중 간간히 홍보인지 구매권유인지 알 수 없는 아저씨 특유의 상술(카펫광고)을 발휘하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발리 아저씨의 집은 ‘Vali's Homestay’로 여행책자에 소개되어 있지,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니 호스트의 ‘광고’ 정도는 들어주는 게 예의 아닐까 싶다.

 

...우리가 저녁을 먹고 있는 중에 발리 아저씨의 딸 ‘사나스’는 ‘김삼순’을 열심히 시청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