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득에게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커피샵에 앉아 가열차게 된장질을 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 인터넷 환경이, 무선 인터넷은 많이 잡히는데 대부분이 비밀번호를 걸어놔서 공짜 인터넷 쓰기가 어려워. 그래서 첫날은 인터넷 카페(PC방)에 가서 메일을 보내려는데, 알다시피 한글 읽기는 가능하지만 한글 쓰기는 거의 99.9999% 불가능에 가까워. 다행히 숙소(라고 하기에는 정말 많이 낙후된)에서 멀지 않은 곳에 괜찮은 커피샵이 있기에 그곳에서 450T(우리돈 대략 4,000원)에 커피 한 잔 시켜놓고, 가져간 노트북으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네.
다 좋은데, 지금 몇 가지 문제가 길을 막고 있지. 우선은 바이크의 냉각장치가 다소 말썽이야. 임시조치를 취하긴 했지만, 이게 터키까지 갈 수 있을런지 심히 의심에 의심이다. 터키에나 가야 BMW 바이크 딜러를 만날 수 있다고들 하거든. 투르크메니스탄과 이란의 사막 한 가운데서 멈춰서 버리기라도 한다면...
그런데 이보다도 더 큰 문제가 있는데, 바로 “비자”문제일세. 이 동네 “스탄”국가들은, 쉽게 말해서 비자 가지고 장사질을 하는 듯 해. 기가 막히지. 우즈베키스탄을 들어가야 하는데,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 비자를 만들지 않았었어. 여기서 만들려고. 그런데 이게 일주일이 넘게 걸려. 그보다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소위 “초청장(편지)”-말레이지아 사람은 예외인데, 한국인은 필요하다는 사실이 우리의 외교력을 말해 주는 듯-을 준비해야 하는데, 말이 초청장이지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여행사간에 돈 받고 “티켓” 장사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그런데, 가끔은 돈을 낸다고 해도 이것을 발급해 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네. 내가 바로 그 경우이지. 다행인 것은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www.stantours.com”이란 사이트에서 초청장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 냈는데, 이것도 돈이 꽤나 들어. 그리고 하루만에 뚝딱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여기 알마티에서 일주일이나 멍 하게 기다려야 해. 덕분에 커피샵에 앉아 노트북 끼고서 ‘된장질’을 실컷 할 수 있지만.
모터사이클을 타고 여행을 하면 좋은 게 있는데, 바로 좋은 사람들(생계형 라이더들 말고 모터사이클링을 즐기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그들의 도움을 매번 받는다는 걸세. 그러기에 어려움이 닥쳐도 계속 ‘keep going’ 할 수 있는 것 같다. 일례로 여기까지 오는데, 한 번은 제대로 죽을 뻔 했지. 바이칼 호수 주변의 커브에서 굴러서 7m 아래 덤불로 떨어지던 순간은 머릿속에서 “아, 이렇게 끝나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 그렇지만 이르쿠츠크에서 좋은 바이크 마스터(정비사)를 만나서 망가진 BMW를 굴러갈 수 있도록 고치고 나서 다시 출발할 수 있었지. 여기 알마티에서는 현대자동차에서 근무하는 바이크 라이더인 올자스를 만나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 항상 도움만 받고 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항상 빚으로 남게 되지만, 아무튼 말 그대로 어드밴쳐다, 어드밴쳐.
이곳을 떠나기 전에 싸구려 헤드셋을 산 다음 “스카이프”에 가입해서 전화하도록 노력해 볼게. 여기 핸드폰을 만들기는 했는데, 한국으로 전화를 걸 때마다 전화비 떨어지는 소리가 뚝뚝 들린다네. 아, 그리고 성찬에게 꼭 축하한다고 전해줘. 결혼식에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만약, 자네 여행 일정이 잡힌다면 이메일 보내주게나. 여기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비자는 가능하다면 9월 10일 경에나 받게 될 것 같고, 또 두 나라의 비자 시스템에 질려버려서 그 두 나라는 그냥 주마간산 식으로 지나 곧바로 이란으로 들어갈 생각이야. 아마도 9월 25일 즈음이면 이란에 있지 않을까 싶다. 여행 일정이 잡히지 않더라도, 여권부터 만드시게나!
그럼, 9월의 맑은 가을하늘에 네 근심 날려버리길 바라며, 줄인다.
된장질 하면서 수시로 메일 보내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