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8. 22 (토)
비자기간으로 인하여 바르나울에서 카자흐스탄을 향해 출발을 서둘렀다. 내 바이크가 있는 빅토르의 정비소로 향하는 중에 앞장 선 빅토르의 정지를 미처 보지 못한 채 알렉스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는다. “쿵!” 알렉스의 CB1000이 빅토르의 가와사키에 부딪치고 만 것이다. 그 사고로 빅토로의 왼쪽 사이드백이 이뚜까 9호의 것처럼 깨지고 말았다. 다행히 큰 인명사고는 없었으나, 빅토르의 바이크에 탠덤하고 있던 나의 왼쪽 검지손가락이 찢겨져 나갔다. 그리고 사이드백이 깨지면서 그 충격으로 왼쪽 종아리 부분에 타박상을 입었다. 하룻밤 신세를 진 사람의 바이크를 고장냈다는 미안함에서였을까, 알렉스의 얼굴에서 긴장이 역력함을 쉽게 읽어낼 수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녀석, (작지만) 부상을 입은 나와 자신의 바이크에 탠덤했던 애인의 안부는 뒷전인 채 혼자 구석에서 ‘쌍시옷’, ‘쌍시옷’을 내뱉으며 자학이다. 다행히 빅토르가 그를 크게 나무라지 않은 채 긴장을 풀어주면서 여행 잘 다녀오라며 배웅까지 해 준다.
보아하니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면 나를 그냥 보낼 것 같기에, 그들 커플을 보내고서 빅토르가 돌아오자 빅토르에게 정비수수료가 얼마인지부터 물었다. 이르쿠츠크에서 프론트 휠 액슬이 휘어진 채 끼워졌다는 것을 이번 정비에서 발견해서 BMW와는 ‘배다른 형제’ 우랄(URAL)의 것을 가공해서 교체했기에 그 비용만 청구한다. 그에게 감사하다는 인사와 동시에 수고에 비해서 거의 공짜에 가까운 정비수수료를 지불(2,500RU)하고 떠날 채비를 마쳤다. 출발 전 기념이라면서 러시아를 나타내는 ‘RUS’ 스티커를 내 바이크에 붙여준다. 그러고선 러시아-카자흐스탄 국경을 맞대고 있는 ‘쿠룬다’로 향하는 큰 길 앞까지 배웅을 나와 주었다.
빅토르와 나흘 간 함께 있다 보니 왜 토니가 빅토르를 좋아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
환전을 미처 하지 않은 까닭에 카자흐스탄에 들어가게 되면 당분간 주유를 하기 어려울 것 같아 쿠룬다 마을에서 미리 주유를 하기로 했다. 쿠룬다 마을의 주유소에 들어서자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앗쿠다?(어디서 왔어?)” “까레이.” “오, 까레이?” 주유소 직원, 주유하러 온 손님, 주유소 내 편의점 아주머니 등 주변사람들이 신기하다면서 연신 디카, 폰카의 셔터를 눌러댄다.
러시아(쿠룬다)-카자흐스탄(쉐르박티) 국경에서 약 세 시간 정도 지체한 까닭에 -사실 나는 다른 국경 통과자들이 자신의 승용차나 버스에서 국경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데 반해서 특별대우(좋은)를 받은 듯 했지만- 카자흐스탄 국경을 통과하자
......
달리다 멈추고 하늘을 바라본다. 귀뚜라미 소리만이 들려오는 시골의 밤하늘은 은하수를 내게 보여준다. 그런데 나의 미적 감수성이 부족해서일까, 별이 너무 많으면 아름답다는 생각보다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광공해에 찌든 ‘도시인’의 슬픈 자화상.
아무튼 국경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인 ‘파블로다르’를 향해서 가는데 수중에 돈(카자흐스탄 텡게, Tg)은 없겠다, 밤은 너무 늦어서 텐트를 칠 장소를 찾는 것도 무리겠다 싶어서 갓길에 바이크를 세우고 모기향을 피운 채 바이크에 기대어 설잠을 청했다. 밤공기가 차갑다. 라이딩 자켓의 방한 내피를 꺼내어 껴입는다. 한 시간 정도가 흘렀을까, 승용차 한 대가 내 앞으로 헤드라이트를 들이대며 다가온다. 도로 순찰에 나선 경찰차였다. 경찰 둘이 차에서 내리더니 그들로부터 갓길에서 자면 안 된다며 제재를 받았다. 두 명 중 한명은 내가 신기했는지 연신 히죽댄다.
......
결국 새벽 2시경에 파블로다르에 들어가게 되었다. 예전에 토니가 여행 중 주유소 뒤편에서 노숙을 했다던 말이 떠올라 천천히 달리면서 깨끗해 보이는 주유소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주유소 뒤편에서 하룻밤을 잘 수 있는지를 묻는다. 처음부터 ‘O.K.’를 받길 기대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임을 잘 안다. 밀고 당기기가 시작된다. 다행이면 다행이랄까, 여종업원 ‘산이라’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한 2~30분이 흘렀을 즈음 결국에는 ‘O.K.’를 받았다. 작지만 큰 기쁨! 같은 길바닥 노숙이지만 그래도 사람들 시선을 신경 쓸 일 없이 건물 뒤편 처마 밑에서 벽에 기대어 잠을 청할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감이 밀려온다.
새벽이 되자 산이라와 함께 근무하는 주유소 경비원이 내게 다가와 바깥에서 자지 말고 주유소에 붙어있는 창고 안에서 잠을 자라면서 창고문을 열어준다. 정말로 눈물이 핑 돈다. 그리고 창고에 들어서자 따듯한 차 한 잔을 대접해 준다.
... 그렇다, 카자흐스탄에서의 첫날은 호의로 시작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