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gJoon Lee 2009. 9. 15. 22:31

2009. 8. 11 (화) 

 

 

어제의 충격에서 벗어나서 바이크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흔히 바이크가 전면충돌 사고를 당하면 앞바퀴가 엔진쪽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것을 속어로 ‘앞빵 먹었다’라고 하는데 이뚜까 9호가 그런 모습이었다. 왼편 프론트 포크가 구부러졌고, 삼발이라고 하는 트리플트리(스템부분)가 휘었다. 전면카울과 헤드라이트를 지지해주는 앞부분 프레임도 휘어졌고, 당연한 결과지만 지금껏 위태롭게 매달려 왔던 왼쪽 사이드백은 완파되었다.

 

 

바이크 클럽의 ‘스타스’가 휘어진 삼발이와 프론트 포크부터 수리를 시작한다. 먼저 구부러진 프론트 포크를 눈짐작으로 펴기 시작한다. 여전히 구부러져 있긴 했어도 얼핏 보기에는 보통의 프론트 포크와 같게 펴졌다. 이제 삼발이를 펼 차례이다. 얼마나 심한 충격이 가해졌기에 휘었는지 모르겠지만 철봉으로 힘껏 펴려고 해도 휘어진 삼발이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오전 내내 휘어진 부분과의 씨름이 끝나고 오후가 되면서, 정상적이지는 않지만 운행이 가능한 수준으로 바이크가 수리되었다.

 

......

 

완벽한 바이크를 타고 멋지게 세계여행을 하겠다는 생각은 이곳 러시아에 오면서 많이 바뀐 것이 사실이다. 러시아 사람들의 물건, 기계에 대한 철학은 여전히 아날로그적이다. 경제적인 현실에 기인한 측면도 있겠지만, 부품이 고장나면 새것으로 교체하기보다 그 부품이 소모품이 아닌 이상 먼저 고쳐서 계속 사용한다. 그리고 도저히 고치기 어려울 때 새 부품으로 갈아 끼워야 한다고 말한다. 부품뿐만이 아니라 모든 기계 전반에 걸쳐 이런 사고가 바탕에 깔려 있다. 때문에 바이크가 고장났을 때, 고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면 우선 그들에게 맏기는 편이 낫다. 만약 그들이 ‘이건 고칠 수 없다’라고 하면 ‘정말로’ 고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몇 십 년 된 자동차나 바이크가 털털거리면서 도로를 달리지만 그들은 계속 수리해 가면서 타고 다닌다. 선진국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어디까지나 기계는 기계라는 그들의 사고방식, 나의 사고에도 조금씩 녹아들고 있었다.

 

 

바이크가 나를 타는 게 아니라 내가 바이크를 타고 달린다.